[한마당-김의구] 빅벤

입력 2012-06-06 18:25

템스강 서쪽에서 런던 시내를 굽어보는 ‘빅벤’은 영국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1859년 7월 첫 종을 울린 이후 150년 이상 그리니치 표준시를 알리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빅벤은 원래 시계탑 내부에 들어있는 가장 큰 종을 가리키는 별칭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계에서 시계탑으로 지칭 대상이 확장된 것이다. 1856년 주조된 무게 16t의 당초 종은 광화문 현판처럼 균열이 생겨 곧바로 13.5t짜리 새 종으로 교체됐다. 첫 종에는 종 설치를 주관했던 벤저민 홀 경의 이름이 새겨졌다. 빅벤은 키가 컸던 그의 애칭이었다. 빅벤이 종 제작 당시 인기를 누렸던 1841년 영국 헤비급 복싱 챔피언 벤저민 콘트의 별명을 딴 것이라는 설도 있다.

시계 설계자는 시계공학자인 E 베킷이다. 가장 큰 종은 1시간마다 울리고, 각각 다른 음정으로 제작된 4개의 작은 종이 15분마다 소리를 낸다. 종탑 바깥에는 반경 7m에 달하는 거대한 시계판이 4면에 설치돼 있다. 96.3m 높이 시계탑 내부에는 334계단이 있다. 원래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으나 테러 문제 때문에 최근에는 외국인들에게 허용되지 않고 있다.

빅벤은 1차대전 기간 중 2년 동안 종이 울리지 않았고, 2차대전 때는 조명을 껐다. 1976년과 2004년 등 수차례 고장으로 시계와 종 작동이 멈추기도 했다. 그러나 1941년 5월 독일군 공습으로 시계판 2개와 탑 일부가 파손됐는데도 시계가 계속 작동한 사실이 영국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영국 방송들은 새해에 빅벤 타종식을 방영하며, 현충일인 11월 11일에도 2분간 묵념을 시작하는 신호로 빅벤 소리를 내보낸다.

영국 의회가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빅벤을 ‘엘리자베스 타워’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인 1897년 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전 남쪽 타워를 ‘빅토리아 타워’로 개명한 전례를 따라 북쪽의 빅벤에도 여왕의 이름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등 의원 331명이 안건에 서명했다.

그러나 사실 빅벤에는 제작 당시부터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이 명시돼 있다. 시계판 아래에 ‘주여, 우리의 여왕 빅토리아 1세를 지켜주소서’ 라는 문구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의사당 남북에 2개의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구상에 억지가 동원됐다는 느낌도 들지만 어쨌든 유별난 영국인들의 왕실 사랑과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불렸던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향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