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강창희 국회의장’이 유념해야 할 것
입력 2012-06-06 18:25
“5공 출신과 박근혜 측근 이미지 털고 타협의 정치 선도하는 모습 보여야 ”
강창희 국회의장 내정자에 대한 야당의 시선이 싸늘하다. 그가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의장 후보로 선출된 직후 민주통합당 우원식 원내대변인이 낸 논평에는 착잡한 심경이 배어있다. 의례적 수사(修辭)라 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다. 150석 제1당이 후보로 내세웠으니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녹아있을 뿐이다.
“우리 국회가 언제까지 이렇게 과거 회귀형이어야 합니까. 강창희라는 이름 앞에는 ‘육사 25기’ ‘신군부 막내’ ‘민정당’이란 과거형 수식어가 붙어있습니다. 독재자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끈끈한 의리를 강조하는 분을 국회의장으로 모시고 어떻게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비단 민주당 대변인만의 심정일까. 강 내정자의 전력을 알고 나면 ‘이런 구시대 인물이 아직도 국회에 남아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66세. 국회의장의 나이로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19대 국회 유일의 5공 출신 인사다. 강 내정자는 1981년 민정당 출범 때 육군 중령에서 예편하고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 35세. 당 조직국장을 지냈다. 군내 배타적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으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5공 출신 국회의장이라니….” 이런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괜찮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강 내정자는 “5공 출신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정치를 어떻게 해왔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6선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자신이 걸어온 길이 떳떳하다는 표현일 게다. 사실 5공 출신이란 딱지가 자랑스러운 건 아니겠지만 그것 때문에 중책을 맡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인생 말년에 운이 좋아, 혹은 능력이 있어 국회의장이 되었으면 국민을 위해 땀 흘려 봉사하면 될 일이다.
강 내정자의 최대 과제는 뭐니 뭐니 해도 국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일이다. 그러나 앞날은 한마디로 가시밭길이다. 여야는 12월 대선승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겠다는 태세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자리다툼 하느라 국회 개원조차 법대로 하지 못했다.
양당의 강성인 이한구,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에 선출될 때부터 알아봤다. 특히 민주당은 며칠 전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대선승리를 위한 집권 준비’를 이번 국회의 제1 과제로 선정했고, 박 원내대표는 “야당은 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선 정국에서 여야의 극한 대립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 내정자가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선도해 나가는 것이다. 국회의장은 선출되는 즉시 국회법에 따라 당적을 이탈하게 돼 있다. 국회 운영에서 중립을 지키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강 내정자의 경우 ‘친박계 7인회’에 속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핵심 측근이다. 의장이 되는 순간 그런 소속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야당으로부터 새누리당과 박 전 위원장 편이라는 의심을 사는 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불가능해진다.
강 내정자는 자민련 사무총장과 부총재 시절 김종필 총재에게 정면으로 대든 이력을 갖고 있다. 내각제 포기, ‘국회의원 꿔오기’와 관련해 정치적 실세였던 JP와 충돌하면서 당직을 집어던졌으며, 제명까지 당했다. 강직한 성품의 원칙주의자임을 말해준다.
의장이 되면 국회운영과 관련해 박 전 비대위원장과 청와대로부터 이런저런 주문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부당한 것이라 판단될 때 과감히 뿌리치는 강단이 요구된다. 의장이 그런 모습을 보여야만 여야 간 타협의 정치, 그리고 생산적 국회가 가능해진다. 국회 운영은 의장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재임 중 ‘날치기 없는 국회’를 목표로 삼았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002년 국회를 떠나며 이런 고별사를 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의사봉을 칠 때 한번은 여당을 보고, 또 한번은 야당을 보고, 그리고 마지막 한번은 방청석을 통해 국민을 바라보았습니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