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승빈] 보훈은 국가체제 존립의 바탕
입력 2012-06-06 18:17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라사랑’은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의 가치를 가장 높이 여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가치가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경시되고 있다. 국가를 위한 희생의 가치를 낮게 여기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줄 모른다. 그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개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금 모으기 운동 등에서 보듯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애국심의 가치가 살아 숨쉬고 있다.
이러한 내재적 가치를 어떻게 일상화하고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보훈정신과 보훈정책이 필요하다.
‘나라 사랑’ 일상화에 필수요소
많은 사람들이 단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부의 업무로서만 보훈정책을 여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선수들이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승리하거나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는 애국심이 끓어오르다가도 국가가 개인에게 의무 이행을 요구할 때는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어?”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와 우리 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단순한 자긍심 교육은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로 흐를 수 있어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다문화 수용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특히 최근의 이념 논쟁을 보면 집단 간 국가관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어 안타깝다.
우리 헌법정신은 독립정신과 민주정신과 자유 수호다. 국가보훈 대상자 역시 대한민국의 독립정신을 지키신 분들, 민주주의를 사수하신 분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군인들이 선정된다. 대한민국을 지금 이렇게 훌륭히 만든 것은 어느 한 집단만의 힘이 아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무신(武臣)’이라는 TV 드라마를 보다가 인구도 많지 않은 몽고군이 왜 그렇게 강할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지만 공통된 점은 몽고 군대의 잔인함과 관용이다. 아울러 몽고군으로 참전한 병사에 대한 공평한 보상과 함께 그 유가족에게도 철저한 보훈이 이루어진 점도 큰 요인으로 꼽힌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초기 로마의 경우 평민이면서 군인이었던 군대가 말기에 가서는 귀족 중심으로 가면서 전리품의 불공평한 분배와 참전병사의 유가족에 대한 보상체계의 결핍으로 인해 평민들의 군대 기피 현상이 생겨나면서 게르만족 용병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로마제국의 멸망을 초래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세계 최초의 사회복지 제도인 영국의 빈민구제법(1601년) 역시 군인 유가족들을 위한 보훈체계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국가보훈의 시작은 보통사람들의 애국정신에 대한 당사자 및 유족들에 대한 확고한 보상체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보훈 정책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공헌한 분들과 그 유가족들이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그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국민들 속에 전파하여 계승·발전시키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
정권 색깔따라 달라져선 안돼
애국심은 국가존립의 기본이 되는 정신으로 국민 통합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애국심이나 국가관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 통합과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다.
국가보훈정책은 국가체제 존립의 바탕이 되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고 애국심의 구체적 발현에서 나오는 것이어야지, 정권의 색깔에 따라서 나오는 정책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이 지켜야 하는 독립정신, 민주정신, 자유주의 수호 정신을 함께 지켜야지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가보훈의 참정신이다.
임승빈 명지대 교수 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