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기름 짜기

입력 2012-06-06 18:12


마태복음 26장 36∼46절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라는 곳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겟세마네는 우리말로 ‘기름 짜기’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름을 짜듯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다(눅 22:44). 도대체 예수님은 거기서 무엇을 위해 그처럼 기름을 짜듯 기도하셨을까요?

첫째, 자신의 원대로 되지 말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기 원하는 것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구속 사역을 코앞에 두고 당신의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셨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께서 죄 있는 생축 제물이 되어 자기 백성의 죄를 속량하는 제사를 드려야 하는 이 일이(고후 5:21)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고 세 제자에게 부탁하시기까지 하며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업드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마 26:37∼39). 하지만 곧 자신이 아닌 하나님 뜻대로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아버지의 뜻대로가 아닌 자신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떼쓰듯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거슬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갈 5:17).

둘째,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들이 이방인들이 하는 기도처럼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중언부언해서도 안 되고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려서도 안 될 것이며 혼자 떼를 쓰듯 일방적인 자기 감정을 표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과 대화하듯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야 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는 아픔, 곧 기름 짜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귀를 열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기만의 독백은 기도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과 상반된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12제자 중에서 차출된 베드로 야고보 요한까지도 예수님의 기름 짜기 기도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씩이나 기도를 요청 받고도 피곤으로 쓰러져 잠을 잤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자신들의 모습을 죄송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막 14:40).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육신의 소욕이 덕지덕지 붙은 기도 생활과 하나님의 생각과는 상관없는 중언부언의 기도를 수없이 중얼거리면서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자위하는 기도꾼들 속에 내가 보이지 않는지요?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들숨 날숨을 규칙적으로 쉬어야 합니다. 자신의 뜻은 내놓고 하나님의 뜻은 받아들이는 온전한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포인트를 주고 내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름을 짜듯 간절히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영현 목사 (광양청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