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프로를 향한 도전
입력 2012-06-06 18:51
최근 바둑을 소재로 한 웹툰 ‘미생(未生·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이 바둑 팬은 물론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미생은 바둑을 좋아하는 한 소년이 프로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직접적으로 바둑이 많이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샐러리맨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 하나 하나에 바둑을 잘 녹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둑을 두고 있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끼’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한 윤태호 작가는 ‘미생’을 그리기까지 고민과 준비를 하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바둑실력이 약한 만큼 바둑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것을 듣고 배웠다. 특히 윤 작가는 프로를 준비하다 포기한 연구생 출신 기사들을 직접 만나 생생한 체험을 들었다.
윤 작가는 “프로가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패배감에 빠져 있는 그들의 정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두려웠다”며 “바둑과 당신의 체험이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정말 바둑을 직업으로 삼고 있거나 프로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본다면 누구라도 가슴을 콕콕 찌르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늘 승자만 존재하는 승부의 세계에서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9단 등 메이저급들은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 항상 회자되지만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얻지 못한 자들은 쓸쓸하게 어둠 속에 묻히게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마이너급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과 심리를 표현하는 글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몇 해 전 박현욱 작가는 ‘이무기’라는 단편을 소개했다. 프로를 꿈꾸지만 늘 마지막 순간에 패배의 고배를 마시다 결국 돌을 쓸어 담고 바둑판을 등지고 나오면서 해방감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바둑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지금도 ‘미생’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시작된 ‘2012 올레배’에서 프로들을 차례로 꺾으며 본선 2회전까지 진출한 아마추어 이호승(26)과 유병용(25)이 그 주인공이다. 이호승은 프로가 되기 위한 입단 포인트 80점을 갖고 있다(100점이면 프로가 된다). 앞으로 이 대회에서 2판만 이기면 꿈에 그리던 프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2회전에서 원성진 9단에게 발목을 잡혔다.
유병용은 아직 입단 포인트 40점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한국랭킹 3위 박영훈 9단을 꺾고 3회전에 진출했다. 어쩌면 프로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도 이르다. 앞으로 한발 한발 미생에서 벗어나 완생(完生)이 되기를 응원한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