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디플레이션에 지친 일본 의원들 “중앙은행, 독립권 내놔라”

입력 2012-06-05 18:48

엔고, 재정적자, 만성 디플레이션.

일본 여야 의원들이 자국 경제에 골칫거리인 이 3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독립권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집권 민주당뿐 아니라 제1야당 자민당 의원들은 일본은행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소수정당인 ‘모두의당’은 지난 4월 입법안을 내놨다. 이들 3당이 제안한 개정내용의 핵심대상은 중앙은행의 고유권한인 인플레이션 목표치 설정권이다. 일본 정부가 인플레 목표치를 일방적으로 설정하든가 BOJ와 공동으로 정하든가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목표치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BOJ에 책임을 지우도록 했다. 심지어 일본은행 총재와 이사회 멤버들을 해임하는 권한까지 정부에 주려하고 있다.

의원들은 특히 인플레 목표치를 법안에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현행 1%를 2%로 올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BOJ는 올 초 처음 목표치를 도입해 1%로 설정했으나 이 정도로는 경기부양 의지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BOJ의 2012년 회계연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예상치가 0.3%에 불과한데서도 명확히 드러난다는 것.

이런 입법 움직임에 대해 민주당 내 최고위층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지난주 의회에서 중앙은행에 새로운 족쇄를 채우는 데 대해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향후 BOJ가 디플레 타개에 실패할 경우 그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자민당 일각에서는 이런 조치를 노다 총리가 직을 걸고 추진 중인 소비세 인상안과 딜을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노다 총리로서도 의회 내 ‘반디플레 동맹’ 멤버가 3분의 1이나 차지하고 있어 일본은행법 개정을 흥정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WSJ는 분석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BOJ가 1998년 어렵사리 얻어낸 독립권을 빼앗길 경우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책이 남발될 우려가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이동훈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