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배의 말씀으로 푸는 건강] 제왕의 장수 비결
입력 2012-06-05 21:39
조선의 임금님 27분의 평균 수명은 겨우 46세 였습니다. 그중 40세조차 넘기지 못한 왕도 11분이나 됩니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나드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불혹을 갓 넘긴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해 보입니다. 임금님들이니 음식 부실로 인한 영양실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늘 아래 만인지상의 자리니 떠받듦이나 약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구요. 오히려 넘침에서 단명의 원인을 찾아야하지 않을까요?
영조 ‘小食’과 정종 ‘운동’
아침과 저녁으로 쌀밥과 팥밥에 12가지 기름진 반찬이 나오는 두 번의 수라외에 면이나 만두, 떡국으로 차린 점심의 낮것상, 이른 아침 죽이나 미음으로 자릿조반, 게다가 늦은 밤 야참으로 편육을 올린 온면을 주로 한 면상까지 다섯 번의 식사를 받았죠. 거기다 오후 시간에 다식, 강정, 꿀 등으로 차린 다담상을 한 차례 더 받으셨으니 그 영양의 넘침이야말로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영조는 당시로선 천수를 누린 83세의 나이로 장수로선 단연 돋보이는 왕입니다. 영조는 검소하고 소박하여 다섯 번의 식사를 세 번으로 줄이고 회의 중에도 식사 때가 되면 일을 멈추고 수라를 챙길 만큼 규칙적인 식습관을 가졌다고 합니다. 당쟁을 없애기 위해 펼친 탕평책에서 비롯된 이름의 탕평채는 채썰은 녹두묵입니다.
여기에 고기볶음 조금과 미나리, 김을 살짝 올려 늦은 밤 회의에 지친 신하들에게 베푸셨으니 영양학적으로도 훌륭해 보입니다. 환갑을 넘긴 다섯 왕 중 한 분인 정종은 인덕궁에서 격구라는 조선식 골프를 즐겼습니다. 신하들이 옥체를 보존하라며 말려도 몸을 움직여 기운을 전신에 통하게 해야한다며 격렬한 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활쏘기와 사냥을 즐기고 식사 후 배 문지르며 산책하기를 거르지 않았고 가끔씩 온천욕으로 심신의 피로를 풀었으니 위생과 육체의 활동 모두에 유익했을 것입니다.
많은 장수 비결이 있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적포도주를 많이 마셔 심혈관질환이 적다고 합니다. 에콰도르 빌카밤바 지역에선 흰 옥수수와 안데스의 감자가 사람들을 건강하게 한다고 합니다. 불가리아의 로도피 산맥 아래 노인들은 요구르트를 많이 섭취해 장수한다고 합니다. 그루지야의 카프카스 마을 사람들은 천연 광천수를 마셔 강한 체력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장수와 연관해 과학적으로 인정된 두 가지 방법은 여전히 영조의 ‘소식’과 정종의 ‘운동’ 뿐 입니다. 적게 먹거나 활동량에 비해 과하지 않게 먹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건강하고 오래 사는 소망을 채워 주는 단순한 비결입니다. 소식은 음식을 에너지로 만드는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리기 산소 생산을 줄이니 이에 의한 세포의 손상과 노화를 줄여주고 운동은 심혈관계를 강화하고 신체기능을 향상시켜 생명을 연장시킵니다.
탐하지 않고 감사를
그렇습니다. 무엇을 먹을까를 탐하고 무엇을 마실까 근심하지 않는 것(눅 12:29)이 성경의 장수비결입니다. 나아가 운동장에서 가쁜 호흡으로 달리는 육체의 단련 뿐 아니라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즐거움으로 달리는 복음의 달음질(고전 9:24)이 왕 같은 우리 제사장들의 장수 비결일 것입니다. 먹거리를 위해 밭에서, 주방에서 수고한 손길에 감사하고, 우리 생명 유지를 위해 식재료로 희생된 다른 생명에 감사하며 그것들을 낸 자연에 감사하다보면 그 자연을 지으신 더 크신 이도 때가 되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구 동아신경외과 원장·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