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길듦’과 ‘철듦’

입력 2012-06-05 18:12


돌고래 쇼에 대하여 동물학대 논란이 있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놀이공원에서 그 쇼를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조련사와 함께 돌고래들이 펼치는 쇼에 아이들은 환호했고 관람객들은 늘 만원이었습니다. 그런 돌고래들의 묘기를 보면서 그것이 조련사에 의해 길들여진 결과라고 생각하니 그 과정이 애처롭기도 했습니다. 돌고래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동물들의 재주는 길들여진 결과일 뿐입니다. 그것들이 철이 들어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길들여지는 것과 철드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길들여지는 것은 동물들처럼 반복된 훈련을 통해 익숙해진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매우 수동적이며 타의적입니다. 하라는 명령대로 저항 없이 따르거나 오랫동안 해오던 것을 반복하면서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그 훈련을 잘 받아낸 동물들이 박수를 받으며 쇼를 펼치고 조련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만족해하는 것입니다(실제로 만족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동물들처럼 사람도 길들이려는 시도들이 역사 속에서 있어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길들이려는 생각 자체는 인간에 대한 모욕이고 또 그렇게 길들여진다 하더라도 진정한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육을 길을 들이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위험한 시도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길들여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른 교육이란 철이 들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이 입시환경과 치열한 경쟁에 부딪히면서 알아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잘 길들여진 학생을 모범생으로 분류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고귀한 인격체고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있기에 길들여지기보다 세상을 바꾸는 역동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의 독특함은 동물들과 달리 철이 든다는 데 있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잘못을 반성하고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은 철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철이 들지 못한 것 같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영적으로도 철이 들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로 인해 길이 들 수 있지만 철이 들지 않으면 스스로 기도하기도 벅차고 진정한 사랑도 불가능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 생활은 더욱 하기 힘듭니다.

이 세상은 하늘에 속한 우리들까지 그 흐름에 길들여지기를 요구합니다.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후 그 분위기에 알아서 길들여지는 경우도 있고, 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고 마는 것입니다. 길들여지기를 거부할 줄 아는 사람이 철이 든 사람입니다.

(산정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