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美 대선이 주는 교훈

입력 2012-06-05 18:37


약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이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물론 아직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약간 더 높다는 분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오바마 우세를 점치는 근거는 복잡한 선거제도도 한몫하고 있다. 대통령은 유권자로부터 더 많은 표를 얻었다고 당선되는 게 아니라 주별로 배분된 ‘선거인단(delegates of electoral college)’의 과반수(270석)를 얻어야 한다.

이러다 보니 공화당이나 민주당으로 승자가 바뀔 가능성이 있는 ‘경합 9개주(9 swing states)’가 선거의 관건인데, 추정컨대 아직은 오바마 대통령이 획득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인단 수가 많다. 여기에는 대표적인 경합주인 플로리다와 버지니아주 등에 민주당 지지 경향이 강한 히스패닉(남미계 주민) 비율이 늘어나는 등 인구 구성의 변화가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5월 실업률이 ‘마의 8%’ 벽을 뚫고 내려가기는커녕 다시 0.1% 포인트 상승하는 대형 변수가 등장했다. 진보적 성향의 워싱턴포스트조차 이제 오바마의 재선 가능성이 50%를 넘지 않는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고 할 정도다.

4년 전 그 열광적인 지지를 감안할 때 롬니라는 그렇게 확고한 차별성이 없는 적수에 오바마가 이처럼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 또 왜 두 후보의 대선 캠페인이 많은 미국 유권자들로부터 공감보다는 정치에 대한 냉소만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는 걸까.

무엇보다 상대방 흠집내기에 골몰하는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주범일 것이다. 오바마 대선팀은 사모펀드 베인캐피털 회장 출신인 롬니의 경력을 비꼬는 원색적인 비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롬니가 30년 전에 세운 이 회사가 특정 회사를 인수해 인력·사업 구조조정을 한 뒤 비싼 값에 되파는 ‘일자리 킬러(뱀파이어)’라는 식이다.

롬니 대선팀도 오바마가 일자리 창출, 정부부채 축소 등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며 ‘오바마의 깨진 약속’ 시리즈 광고를 방송사의 황금 시간대에 일제히 내보내고 있다.

‘말 잘하기로 유명한’ 오바마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재집권할 경우 어떻게 국정을 이끌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이는 롬니도 마찬가지다. 롬니의 경제운용 계획은 감세와 기업·금융 규제 완화를 골격으로 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부시의 감세 정책은 의도했던 만큼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고, 금융 규제 완화는 금융위기를 자초했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도 롬니는 이러한 논란을 잠재울 국정 비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오바마가 집권 3년 반이 지났음에도 경제 성적표의 부진을 일자리 법안 등을 보이콧한 공화당 잘못으로만 돌리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지난주 일요일 NBC방송 대담프로 ‘밋 더 프레스’에서 한 대담자는 “반대파와 만나서 타협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위협해서라도 핵심 정책과제를 실행하는 게 대통령 리더십이다. 오바마는 밖에서 비판만 한다. 너무 정치적이고 리더십이 없다”고 했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현재 미 대선과 유사한 광경이 자주 목격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상대 후보를 흠집내기보다 긍정적인 대안을,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국정운영 계획을 제시하는 후보의 말에 국민들이 귀 기울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성숙하고 신뢰를 주는 후보에게 유권자들의 표심이 쏠릴 것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