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의구] 비핵화가 김일성 유훈이라더니

입력 2012-06-04 18:35


2005년 6월 17일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결과를 브리핑했다. 그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면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비핵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핵무기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해찬 당시 총리는 “북한의 국가운영원리는 김 주석의 유훈통치”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도 6일 뒤 북한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김 주석의 유훈이라고 한 데 유의한다”고 무게를 실었다.

당시는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공식 발표하고(2월), 폐연료봉 8000개를 인출해(5월)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였다. 정 전 장관 방북 직후인 7월 6자 회담이 재개됐고 2개월 뒤에는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의 포기 등을 담은 9·19공동성명이 채택됐다. 하지만 북한은 이듬해 7월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시험발사 했고, 10월 9일에는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6자 회담의 뒷전에서 핵능력을 계속 키워왔던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헌법에 버젓이 ‘핵 보유’ 명시

북한은 급기야 지난 4월 헌법을 개정하면서 전문에 핵 보유를 김정일의 치적으로 명시하고 나섰다. 유훈 발언이 처음부터 거짓이었거나, 외부 공세의 예봉을 꺾기 위한 대외 선전용이었음을 드러낸 셈이다. 국제 여건이 바뀌면서 유훈이 수정된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미국 민주당의 집권이나 중국의 영향력 확대 등 북한 입장에서는 상황이 호전돼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세습체제의 모순이 깊어지고, 지배권력의 유동성이 높아지자 6·25전쟁 이후 품은 핵 집념을 더 강하게 추구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타당할 것이다.

비핵화 유훈이든 핵 무장론이든 국제 현실과 동떨어진 폐쇄적 전략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는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를 전제로 한다. 미군이 1991년 한반도 전술핵을 모두 철거한 뒤에는 미 핵우산에서 남한이 이탈해야 한다는 전제를 깐다. 군사공백을 감내하는 ‘위험한 아량’을 발휘하지 않는 한 우리도 핵 능력을 갖출 수밖에 없으니, 결국 비핵화가 아니라 핵 위험을 높이자는 궤변이 된다.

핵 무장론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개정 헌법에서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북한 압살 공세와 세계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그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서방국가들이 우리 의지에 반해 북한을 임의적으로 소멸시키려 군사공격에 나설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 게 현재 국제사회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탈피한 중국과 러시아는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리아처럼 대량학살을 자행한 정권조차 이들의 비호 아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과 경계를 맞댄 중·러는 순망치한의 국익 때문에 후광 효과가 더 크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북한 정권이 핵 보유를 고집하는 것은 세습 체제 보장과 경제적 이익 관철을 위한 협박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궁극 해법은 체제 자체 변화

문제는 북한 실제 핵 보유 여부를 떠나, 시대착오적 전략을 포기시키는 길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대화를 유도해도 이면에서 무력을 보강하고, 국제사회가 제재를 해도 특별한 반응이 없으니 갑갑할 노릇이다.

민주화를 통한 경제 회생에 나서고 있는 미얀마 정권이 최근 핵 관련 활동 전면 중단과 북한과의 정치·군사 관계 청산을 선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북핵 위협의 궁극적이자 가장 빠른 해법은 결국 북한 사회 자체의 변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길은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핵 협박이 오래 두통거리로 남을 모양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