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아 무상보육, 원점에서 돌아보라

입력 2012-06-04 18:37

우려가 현실이 됐다. 보편적 복지의 부작용은 국가의 신뢰를 갉아먹고, 국민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경우가 영아 무상보육사업이다. 지난 3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선심성 복지공약을 쏟아내는 과정에서 정부가 부모의 소득에 관계없이 0∼2세 영아의 보육을 맡는다고 발표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비용을 절반씩 분담키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칼끝의 꿀이었다. 정부도, 국민도 종국에는 모두가 패배하는 과잉복지의 함정이었던 것이다.

무상보육의 가장 큰 폐해는 젊은 부모의 모럴해저드로 확인됐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나라의 영아시설 이용률은 2009년 이미 50.5%에 달했는데 이 제도 도입후 30% 정도 더 늘어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고하는 30%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만 2세 미만 영아는 가정보육이 바람직한데도 정부가 돈을 대는 시설보육을 선택하도록 만든 것이 복지의 함정이었다. 그렇다고 이들 부모를 탓하는 것은 부질없다.

재정은 코앞에 닥친 과제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3일 “7월에 충남과 충북을 시작으로 9월이면 6곳에서 바닥을 드러내다가 12월이면 제주까지 전국에서 보육예산이 고갈될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도 예외가 아니어서 7∼8월에 25개 자치구 보육사업이 모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 3월 시·도 지사들이 주장한 내용의 연장선상이지만 위기의 구체적 징후를 알리는 타임머신으로 보인다.

지자체들은 당초에 정책을 결정할 때 사전협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앙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영아 무상보육은 보편적 복지이므로 전액 국비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은 돈을 대는 주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대안을 고민할 때다. 재정적으로, 교육적으로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은 정책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은 재앙 아닌가. 다소 고통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선택적 복지로 환원해 정책실패의 교훈으로 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