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22분 고개 숙여 선배들을 기리다… 천안함 46용사 고교 후배들 ‘해상작전체험’
입력 2012-06-04 19:29
“전투 배치, 전투 배치.”
칠흑같이 어두운 4일 밤 9시, 백령도 연화리 인근 해역을 경비 중인 우리 해군 초계함 제천함에 비상이 걸렸다. 기관부 침실에서 막 잠이 들었던 김기철(17·서울 대진고 2)군은 사전 교육을 받은 대로 용수철처럼 일어나 구명정을 걸쳤다.
전투 배치를 외치던 사이렌은 어느새 ‘적함 출현’을 반복하고 있었다. 김군은 승조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전투배치 위치인 기관실로 달려갔다. 적함 출현이라는 비상상황에서 기관실 계기판은 수시로 변하고 있었다. 승조원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몸놀림은 더할 나위 없이 빨랐다.
김군이 제천함에서 비상 상황을 체험한 이유는 그가 천안함 폭침으로 목숨을 잃은 고(故) 장철희 일병의 고등학교 후배이기 때문이다. 김군 등 천안함 46용사의 고교 후배 41명은 ‘제2회 해양수호대 해상작전체험’을 위해 제천함에 올랐다.
밤 9시22분 제천함의 기적이 울렸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북한군 어뢰 공격을 받은 바로 그 시각, 바로 그 해역이다. 막 훈련을 끝낸 김군을 비롯한 46용사의 후배들과 제천함 승조원들은 고개 숙여 묵념했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뭉클한 것이 느껴졌다. 김군의 머릿속에는 낮에 본 찢겨진 천안함 선체가 각인돼 있었다.
이어 ‘용사의 후배들’은 훈련 소감을 담은 ‘자유수호 다짐문’을 해군이 사용하는 발광(發光)신호를 통해 북녘으로 보냈다. 선배들이 목숨 바쳐 지킨 자유민주주의와 통일 염원이 담긴 다짐문은 어둠 속으로 뻗어 나갔다.
올해 두 번째로 6일까지 2박3일간 이어지는 체험행사에 참가한 대원들은 앞서 이날 오후 천안함의 모항인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발대식을 가졌다. 사령부 내 안보공원에 전시된 천안함 선체와 승조원의 유품, 당시 상황을 재연해 놓은 서해전시관을 돌아본 뒤 천안함(1300t급)과 같은 급인 제천함에 탑승했다.
대원들은 함상체험을 마치고 5일 연화리의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참배한다. 이어 대전 계룡스파텔에서 천안함 유가족을 만나고, 6일에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천안함 46용사 묘소를 참배할 예정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