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임항] 근로시간 단축의 걸림돌

입력 2012-06-04 18:28


환경재단의 최열 대표는 3일 한국환경운동 30년을 맞아 출연한 라디오 방송에서 “환경은 생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익의 무분별한 추구는 결국 생명을 해친다”며 이익(이윤)과 생명의 상충관계를 지적했다. 환경운동은 결국 사람을 포함해 모든 살아 있는 것, 즉 생명을 이익으로부터 온전하게 지키려는 것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이익과 생명의 조화를 이뤄보자는 정부 차원의 드문 시도가 최근 실제 근로시간의 단축 정책으로 표면화됐다. 과도한 노동시간의 단축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에 공감하고 근로시간 단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위해 그간 연장근로 시간에 합산하지 않았던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5일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하는 방안은 산업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연내 법개정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냈다. 앞서 22일 청와대 관계장관회의에서도 격론이 오갔으나, 시간에 쫓기지 말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인건비 추가부담을 우려한 재계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한다.

장시간 근로체제는 이윤의 효율적 추구를 위한 것이다.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더라도 소수의 근로자에게 장시간 근로를 시키는 것이 근로자 수를 늘리는 데 따른 인건비와 훈련·노무비용 상승 부담을 떠안는 것보다 이윤증대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별 기업의 이윤 극대화 요인이 국가경제에는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줄지 않는 산업재해의 사회적 비용, 성장을 무색케 하는 고용률의 정체 등은 그런 해악의 일부일 뿐이다.

결국 이윤추구 행위도 생명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선진국치고 대규모 양판점 등의 영업시간을 제한하지 않는 나라를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장상인 등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한다는 차원만 강조하다보니 영업시간 규제정책의 타당성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그들과 자영업 근로자의 상습적 야간근무에 따른 건강 악화를 방지한다는 목적이 더 중요하다. 어떤 부류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사소한 편의를 위해 자신의 건강과 가정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가 정상적일 수는 없다.

행복은 지금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지금 행복하지 않는 사람이 나중에 행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국가도 개인과 다를 바 없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개인의 행복이나 분배는 늘 뒷전이었다. 그런 ‘불균형 성장’이 과연 당연한 것인가. 다른 선진국들의 경험은 그 반대, 즉 균형성장이 일반적임을 보여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을 때의 근로시간도 지금의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적었다. 한국기술교육대 어수봉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넘은 1988년에 연간 1833시간(이하 2010년:1778시간), 일본은 87년에 2096시간(1733), 영국은 96년 1742시간(1647), 독일 90년 1548시간(1409)이었다. OECD 평균은 1802시간(1749). 반면 우리나라는 2007년 2316시간(2193)이었다.

오랜 세월 유예했던 행복이 지금 우리에게 찾아왔는가. OECD 최고의 자살률,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주관적 행복도가 OECD 꼴찌라는 최근 조사결과 등 각종 사회지표들은 ‘행복은 저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뒷받침한다. 이제 근로시간 단축은 경제적 득실보다는 헌법상 행복추구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임항 환경 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