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제성호] ‘통영의 딸’ 유엔의 강제구금 인정 이후
입력 2012-06-03 18:12
최근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가 ‘통영의 딸’ 신숙자씨와 두 딸(오혜원, 오규원)이 북한에서 임의적 구금 상태에 있다고 판단한 유엔인권이사회(UNHRC) 산하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WGAD)’의 공식 의견서(결정문)를 공개했다. WGAD의 이 같은 결정은 법적·정치적으로 의미가 매우 크다. 앞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외교와 북한 인권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법적 의미 큰 판단
우선 WGAD는 신씨 모녀의 구금을 ‘임의적(arbitrary)’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북한이 명확한 범죄의 증거 없이, 재판 등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인신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음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다.
실무그룹은 또 “1987년 이래 구금은 임의적이었고, 현재도 임의적”이라고 규정했다. 87년은 북한이 연좌제를 걸어 신씨 모녀를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 강제구금한 해이다. 유엔은 이때 임의구금이 발생하였고, 이러한 범죄행위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 곧 계속범(繼續犯) 성격을 가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법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실확인(fact-finding)이라고 하겠다.
WGAD는 북한의 행위가 “세계인권선언 제8∼11조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제9조 및 제14조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구금 혹은 심각한 자유의 박탈은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구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무릇 국제법 위반은 국가책임을 발생시키며, 당사국은 이를 해제할 의무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WGAD는 피해자의 즉각적인 석방(immediate release)과 적절한 보상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다. 여기서 석방은 일차적으로 구금상태 해제를 가리키지만, 신씨 유해와 두 딸의 국내송환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결정은 1993년 오길남씨가 낸 청원에 대해 실무그룹이 “사실관계가 불충분하다”며 기각(1995년)한 사안을 번복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획기적이다. 이는 목격자들의 증언과 지난 17년간 축적된 북한인권 실상이 모여져 가능했는데, 신씨 문제에 대한 유엔의 강력한 해결 의지를 시사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후속 결의안 채택 추진해야
앞으로 국제사회는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무엇보다 이른 시일 안에 북한 당국이 신씨 모녀의 구금상태를 해제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요구의 이행을 북한 측에만 맡길 순 없다. 유엔 관리의 현장조사 및 확인 절차가 필수적이다.
북한이 여기에 호응하게끔 국제공조를 통해 압박과 설득을 계속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WGAD의 후속조치(결정문 이행 관련 답변 요청) 외에도 유엔 총회와 인권이사회의 후속 결의안 채택도 추진해야 한다.
북한은 5월 초 “신씨는 간염으로 사망했으며 임의적 구금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으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국제사회는 사망의 진위, 사망 시 강제구금과의 인과관계,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이와 관련, 북한 당국에 사망 관련 증거를 제출토록 요구하는 한편 인도주의 차원에서 유해를 남편의 품으로 송환토록 해야 한다.
만일 신씨가 살아있다면 북한도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일명 자유권규약)에 따라 거주 이전의 자유를 인정·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이 경우 당사자의 의사(선택)가 관건이다. 신씨가 아무런 공포를 느끼지 않는 제3국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에 의해 자유의사를 확인한 다음 원하는 곳으로 보내야 한다. 두 딸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스웨덴 정상회담에서 신씨 송환문제를 거론하며, 세계인의 관심을 촉구했다. 북한 인권은 이미 국제화되어 있는 중요 이슈로서 국제공조를 통한 해결이 정당성이나 실효성의 면에서 적합하다. 이 점에 주목하여 정부는 체계적이고 정교한 신씨 모녀 구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19대 국회도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