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로봇에 감성을 입히다… 장흥아트파크 여름맞이 기획전

입력 2012-06-03 18:01


경기도 양주시 장흥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술집과 모텔이 즐비한 유흥지였다. 하지만 2006년 가나아트 갤러리에서 토탈미술관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단지 ‘장흥아트파크’를 개관한 뒤 예술촌으로 거듭났다.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과 야외 곳곳에 설치돼 있는 조각 작품을 감상하려는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주말이면 줄을 잇는다.

개관 6년째인 장흥아트파크가 여름을 맞아 두 가지 기획전을 마련했다. 인간을 닮은 로봇을 소재로 작업하는 김택기 조각가의 ‘메카 센티멘탈(Mecha Sentimental)’ 전이 24일까지 미술관에서 열리고, 이지현 이승오 한조영 등 입주 작가 릴레이 전시 ‘탐구생활’이 17일까지 레드스페이스에서 진행된다. 유망한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김 작가의 작품 ‘피아니스트’는 로봇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형상화했다. 현대 과학의 결정체인 로봇은 강력한 힘의 소유자이자 냉철한 존재로 그려져 왔다. 여기에 ‘로보트 태권 V’와 같이 천하무적 영웅의 모습은 로봇을 더욱 차가운 기계의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하지만 작가는 로봇에게도 따뜻한 감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로봇이 가진 예술적 감수성을 파고들어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의 작품 속 로봇은 해변이나 광장 등에서 피아노를 친다. 로봇은 야경이 아름다운 텅 빈 공원에서 고독을 씹으며 색소폰을 불기도 하고, 외출을 위해 화장을 하고 키스를 나눈다. 얇은 철사로 만들어진 로봇의 몸은 기계라는 태생적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깨지기 쉬운 그들의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

‘탐구생활’ 전에 참여한 이지현 작가는 ‘꿈꾸는 책(Dreaming Books)’이라는 작품을 통해 책의 기능, 나아가 우리 시대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다. 작가는 책장을 찢고 뜯어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면 책은 내용과 형식이 해체되고 하나의 펄프덩어리로 변한다. 전하는 내용이 사실이든 허구든 책은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버려진 책들을 이용해 색종이를 켜켜이 쌓아올리듯 작업하는 이승오 작가의 작품 ‘계층(Layer)’은 옛것의 소멸과 새것의 탄생이 공존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소재로 쓰이는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본질에서 벗어나 그림의 선과 색으로 변신하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등을 차용한 작품이 재미있다.

스티커 조각들을 화면에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한조영 작가의 ‘야경(Darkview)’은 세상에 대한 공포와 심리적 공황상태를 느꼈던 한 순간의 체험을 담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비치는 빛은 삶의 구조신호와 같다. 힘들고 지칠 때 장흥으로 나들이를 떠나 패기 넘치는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하며 재충전의 기회를 삼는 것은 어떨까. 입장료 4000∼7000원(031-877-05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