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의 ‘영성의 발자취’] (22) 잔느 귀용 ② 깊은 기도

입력 2012-06-03 18:04


아기가 엄마 품에서 젖을 빨듯 기도도 그래야 한다

고난은 우리를 기도로 내몰고, 기도는 우리에게서 고난을 내모는가? 잔느 귀용의 삶을 통해 고난은 그리스도인에게 최종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유익을 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귀용은 어떻게 그 많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었을까? 그가 겪은 많은 고난들은 그의 자서전적 고백 ‘순전한 사랑’에 잘 나타난다. 이 책에서 귀용은 그의 삶이 한마디로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 축복된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나의 기도의 영은 기도를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고 더욱 성장해갔습니다.”

고난은 말하자면 그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한 힘의 원천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에게 추운 겨울과도 같았다. 누구나 겨울을 좋아하지 않지만 겨울은 새 봄을 잉태하는 계절이다. ‘영적 성장 깊이 체험하기’(원저:변명)에서 귀용은 이렇게 말한다. “겨울은 순례 길을 걷는 우리에게 축복의 계절이다. 왜냐하면 겨울은 우리의 불완전함을 제거해주는 정화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겨울은 나무의 외면을 위축시킨다. 이를 통해 나무 깊은 곳에 있는 생명이 더 이상 쓸데없이 소진되지 않도록 돕는다. 대신 나무의 생명은 가장 깊숙한 줄기와 보이지 않는 뿌리 부분으로 모여든다.”

그는 삶의 긴 겨울을 통해 자기 포기를 배웠고 자기 포기는 곧 기도로 이어졌다. 자기 포기는 마치 추운 겨울에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과 같다. 나무 입장에서는 힘들겠지만 잘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무성한 잎으로 옷 입혀진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 귀용의 기도는 먼저 성경으로 시작한다. 그는 간단하면서도 실천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기도로 안내한다.

기도할 때 먼저 짧은 성경 구절을 읽으라. 성경을 많이 그리고 빨리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화하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을 읽다가도 잠시잠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지성을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고정시키기 위해서이다. 성경을 읽을 때 감동이 오면 곧바로 성령님께 집중하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목적도 중요하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에서 귀용은 이렇게 말한다. “왜 기도합니까? 왜 주님께 나아갑니까? 주님 앞에서 얻는 감미로움 때문입니까? 주님의 임재의 즐거움 때문입니까? 내가 더 고상한 길을 제시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위하여 주님께로 나아갈 때 순결한 사랑, 즉 그 자체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사랑으로 나아가십시오. 주님으로부터 아무것도 구하지 말고, 다만 그를 기쁘시게 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기도에는 반드시 영적 즐거움과 행복이 있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면 기도는 단지 수단이 되고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귀용은 많은 기도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가 기도할 때 겪는 실제적인 문제를 다룬다. 기도할 때 집중이 잘 안 되고 산만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당황하지 말고 기도를 잠시 쉬는 것이 좋다. 기도할 때 생각이 흐트러지고 복잡해지면 그 원인을 찾거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기도는 자신의 생각에 집중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혹이 올 때는 어떻게 하는가? 우선 기도하는 나에게 유혹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혹이 올 때 유혹과 맞붙어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영적 멘토 페네롱의 말을 인용한다. “아이들이 늑대나 곰을 보았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렇다. 아이는 자기를 향해 무서운 존재가 달려올 때 그를 쳐다보지 않고 재빨리 엄마의 품으로 달려간다. 마찬가지로 유혹이 올 때 우리는 유혹과 싸우지 말고 하나님께로 즉시 달려가야 한다.

영적 메마름은 어떤가? 영적 메마름이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종종 찾아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왜 영적 메마름이 찾아올까? 귀용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를 허락하시는 목적은 영적인 게으름으로부터 당신을 깨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숨기시는 목적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영적 메마름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 잠시 숨어 있는 상태다. 우리가 영적 포만감에 젖어 자만해 있을 때, 우리가 영적 부요의 타성에 젖어 감사를 잃어버릴 때 엄마가 아이를 떠나 잠시 장롱 뒤에 숨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떠나 숨으신다. 그러나 이때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재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영적 메마름이 올 때 우리는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절대 조급해 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귀용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의 조화다. 이 경우의 좋은 비유가 아기와 엄마의 비유이다. 아기가 배가 고프면 엄마 품으로 들어간다. 그에게는 젖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엄마에게도 젖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엄마 품에 있는 아기는 드디어 입을 벌려 젖을 빤다. 젖은 엄마 품에 안겼다고 자동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기가 입을 벌려 젖을 빨아야 젖이 나온다. 그러나 일단 아기가 젖을 빨면 젖은 스스로 나온다. 아기는 젖을 빨지만 젖은 스스로 나온다는 사실이 기도의 신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일단 젖이 나오면 아기는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고 단지 흘러나오는 젖을 삼키기만 하면 된다. 스스로 나오는 젖을 삼키는 아기는 행복감에 취하게 되고 곧 엄마 품에서 잠들게 된다.

이것이 귀용이 우리에게 가르친 탁월한 기도의 진수다. 여기에 언제라도 아기에게 젖을 주려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품에서 입술을 벌려 기도해야 하는 인간의 노력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하나의 비유가 있다. 돛단배의 비유다. 강과 바다의 이미지는 귀용이 자주 사용하는 영적 이미지다. 돛단배가 바다로 항해할 때 먼저 강에서 노를 저어야 한다. 배가 돛으로 가던 시절, 배는 노를 저어 강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것은 힘든 출발이지만 또한 희망의 출발이기도 했다. 좁은 강을 저어 한참 나가면 바다가 나오고 사공은 그때부터 돛을 편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 돛은 움직이고 배는 망망대해를 향해 나간다. 듣기만 해도 그림처럼 펼쳐지는 이 비유를 통하여 귀용이 말하고자 한 것은 기도는 내면의 작은 갈망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기도는 처음부터 망망대해가 아니다. 망망대해를 향하는 배는 작은 강에서부터 노를 저어야 한다. 노를 젓지 않으면 망망대해도 없다. 그러나 일단 배가 강을 지나 바다에 이르면 돛이 스스로 움직인다. 그때부터는 배는 사공의 힘이 아니라 바람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사공이 바람에 자신을 잘 맡기는 한, 배는 곧 망망대해에 이르게 된다.

기도의 사람, 잔느 귀용. 그가 칠흑 같은 고난 속에서 깨닫고 발견한 깊은 기도에의 초청이 얕은 물가에서 서성대는 우리의 기도를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게 한다.

귀용이 칠흑 같은 고난 속에서 깨달은 기도 본질

▶아기가 젖을 빨면 젖은 스스로 나온다. 젖이 나오면 아기는 흘러나오는 젖을 삼키기만 하면 된다. 아기는 곧 행복감에 엄마 품에서 잠들게 된다. 언제라도 ‘젖’을 주려는 하나님과 인간 노력의 조화를 나타낸다.

▶배는 노를 저어 강에서 출발한다. 곧 바다가 나오고 사공은 그때부터 돛을 편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 돛은 움직이고 배는 망망대해를 향해 나간다

<한신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