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그리움을 왕복하는 ‘서정의 양면’… 양성우 시집 ‘내 안에 시가 가득하다’

입력 2012-06-01 18:10


“하염없이 비가 내리네/ 지난날 내가 군인들의 총부리에 떠밀려서 광주감옥에/ 오래 갇혔을 때/ 면회도 안 시켜주는 감옥 앞에 날마다 오셔서/ 담장을 주먹으로 때리며 내 이름을 부르면서 우시던/ 어머니의 눈물 같은 비”(‘봄비’ 전문)

양성우(69·사진) 시인은 신작 시집 ‘내 안에 시가 가득하다’(실천문학사)에서 상실과 그리움이라는 서정의 양면을 보여준다. 상실이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이 현실의 불모성을 환기하면서 동시에 합일에 대한 지향을 낳는다고 할 때, ‘봄비’와 ‘어머니의 눈물’은 그의 가슴에서 합일되고 있다. 주먹으로 감옥 담장을 때렸을 때 내리던 그 시절의 ‘봄비’가 이제는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봄비’로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시집 ‘겨울공화국’(1977)으로 일약 우리 시대의 투사가 됐고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1985)를 역임하는 등 재야민주화운동을 이끈 그의 가장 큰 무기는 시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투사는 언어를 소유하지 않았던가.

“내 마음은 어디에서 무엇이 변하여 내 안으로/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몸은 본래 물이었던 것/ 밤새 이슬방울로 맺혀 있다가 때로는 흥건히/ 땅을 적시고 여울져서 소리 내며 흐르는 물/ 내 몸은 저 가을산 등성이에 피어오르는 안개였던 것/ (중략)/ 나에게 오기 전의 내 몸은 한 줌 흙이었던 것”(‘인제 가는 길에’ 부분)

강원도 인제 설악산 가는 길목에서 문득 마음으로 온 것과 몸으로 온 것을 떠올리며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겠으되, 몸만큼은 흙에서 왔을 거라는 상념으로 인해 마음에까지 단풍이 들고 있다. 그는 가을산만 바라봐도 어느 새 마음에 단풍이 드는 나이에 이른 것이다. “내가 생각으로 죄를 짓고 있는 동안에/ 나의 노래의 샘은 마르고 기쁨은 사라졌다/ 내가 생각으로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하는 동안에/ 유리로 쌓은 티 없는 꿈의 탑은 무너지고/ 저무는 바다의 밀물처럼 슬픔이 밀려왔다”(‘내가 생각으로 죄를 짓고 잇는 동안에’ 부분)

신경림 시인은 추천사에서 “양성우 시를 관류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한(恨)이라 할 수 있다”며 “그 한은 삶의 구체에서 오는 것이기보다는 이 땅의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보편적으로 지니게 된 정서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