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내 태어난 세계와 마지막 연결고리”…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

입력 2012-06-01 18:17


픽션을 거부하고 모든 작품을 자전적인 기록으로 써내려가고 있는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72)의 ‘한 여자’(열린책들)는 어머니에 대한 비망록이자 전기이자 소설이다. 1906년생인 에르노 어머니는 1984년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2년 뒤인 1986년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어머니가 사망한 직후 10개월에 걸쳐 기록한 이 작품은 1967년에 사망한 아버지에게 바치는 ‘남자의 자리’(1983년)와 짝을 이루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 사후 보름만인 4월 20일이다.

“나는 어머니에 관한 글을 계속 써나가겠다. 어머니는 내게 진정 중요했던 유일한 여자이고, 2년 전부터는 치매 환자였다. 기억의 분석을 보다 쉽게 해줄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자면, 아버지의 죽음과 남편과의 헤어짐이 그랬듯 어머니의 병과 죽음이 내 삶의 지나간 흐름 속으로 녹아들 때를 기다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다른 것은 할 수가 없다.”(18쪽)

눈에 띄는 점은 작가가 어머니의 일대기를 유장하게 서술하고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편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집요하게 쌓아나가며, 그저 보여줄 뿐이다. 아니, 에르노는 이에 부합하는 서술 방식을 찾아내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을 보여준다. 문단과 문단 사이의 흐름을 툭툭 끊어 놓거나 때로는 길고 때로는 짧은 간격들이 그것이다.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가족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접점에, 신화와 역사의 접점에 위치하리라. 나의 계획은 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진들도, 나의 기억도, 가족의 증언도, 내게 진실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머무르길 바란다.”(19쪽)

그가 말하는 ‘문학보다 아래 층위’란 무엇일까. 그것은 소위 ‘문학적인 것’에 담긴 통념들의 명백한 거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시적인 표현’ ‘아름다운 표현’, 요컨대 ‘미사여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어머니를 한 시대를 살다 간 중하층 계급의 전형적인 여자로 바라보기 위한 ‘거리 두기’에 있다.

데뷔 시절부터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의 카페-식료품 점원이었던 자신의 유년 시절로 구성된 자전적 소재에 몰두하기 위해 픽션적 글쓰기를 포기한 그녀는 이 작품에서 이브토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1906년, 여섯 아이 중 넷째로 태어났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지 않았단다.’ 그 말을 할 때 내비치던 자부심.) 그들 중 넷은 평생 이브토를 떠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평생의 4분의 3을 보냈다. (중략) 외할머니의 말은 곧 법이었고, 외할머니는 고함과 매질을 통해 자식들 훈육에 힘쓰셨다.”(20∼21쪽)

이브토에서 태어나 파리의 퐁투아즈 병원이 운영하는 노인요양원에서 숨을 거둔 어머니의 시신이 영구차에 실려 다시 이브토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훑어가고 있는 에르노는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고리를 잃어버렸다.”(110쪽) 정혜용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