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조선의 천재’ 이인성
입력 2012-06-01 18:08
대구에는 ‘이인성 나무’가 있다. 이 지역 출신 화가 이인성(1912∼1950)의 그림에 등장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품명은 ‘계산동 성당’. 종이에 수채로 1930년대의 성당 모습을 담으면서 감나무를 그려 넣었다. 고딕 첨탑과 붉은 벽돌건물, 십자가가 화면에 꽉 들어찼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무다. 그림의 배경이 된 지 80년이 지났으니, 수령 100년은 너끈하리라. 다만 지금은 등나무 휴게실이 만들어져 그림 속 장면의 재현을 방해한다.
대구시도 이인성을 아낀다. 수창초등학교 출신으로 지역 화단을 살찌운 그를 대구의 아이콘으로 예우한다. ‘이인성 미술상’을 제정해 해마다 시상하고, 두류공원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그러나 일본에서 귀국한 후 화업을 꽃피운 남산병원 3층의 ‘이인성 양화연구소’나 그의 아지트였던 ‘아르스다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점은 아쉽다.
이인성은 17세 때 조선미술전람회(鮮展)에 입선한 뒤 연이은 특선으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안았다. 193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당시 유행하던 반 고흐와 고갱 등 인상주의를 자신의 화풍을 구축하는 데 활용했다. 요미우리신문에 ‘조선의 천재 이인성’이라는 기사가 실린 것은 1932년이었다.
귀국 이후 그의 관심은 조선의 향토였다. “적토(赤土)를 밟으면 청순한 안정을 준다. 적청(赤靑)의 지붕빛이 보기에 좋다”는 수필을 남기기도 한다. 이인성의 대작들은 대부분 붉은 땅에 푸른 하늘과 초록 식물을 배치했다. ‘가을 어느 날’에서는 건강한 원시주의를 표현해 놓고 주인공의 눈을 감기는 식으로 식민지 조선의 불구성(不具性)을 표현했다. 조국의 현실에 대한 고민을 그렇게 드러낸 것이다.
이인성의 주옥같은 작품은 ‘鄕(향)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는 덕수궁미술관에서 8월 26일까지 만날 수 있다. 회화 75점과 수많은 자료가 나왔다. 시비 끝에 경찰 총에 맞아 숨진 비극적 최후, 39세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세 번의 결혼 등 간단치 않은 삶의 앨범도 만날 수 있다.
다만 대표작인 ‘경주의 산곡에서’는 볼 수 없다. 이인성 그림의 최대 컬렉터인 삼성미술관 리움의 상설전에 출품돼 있다는 이유다. 그러고 보니 삼성-대구-이인성의 관계가 손금처럼 잡힌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