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보유국’ 못박아 몸값올리기… 한·미 “수용 못해”
입력 2012-05-31 18:57
개정헌법에 명시 배경·파장
북한이 개정 헌법에 ‘핵보유국’이라고 명시한 데 대해 우리 정부와 미국은 “결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을 통해 “미 정부는 북한을 핵보유국(a nuclear power)으로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오랜 기간 고수해 왔다”고 밝혔다. 토너 부대변인은 “2005년 ‘9·19 공동성명’에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도록 돼 있다. 우리는 북한이 이런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지도부는 매우 냉혹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그들의 정책을 냉정하게 검토하고, 핵보유국이 되려는 야욕에 앞서 주민들을 먼저 챙기고 국제사회에 동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31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일방적인 핵보유국 주장은 어떤 경우라도 수용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 포기를 명시한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와 1874호를 준수해야 한다”면서 “거듭 잘못된 선택을 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길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북한이 한·미를 비롯해 국제적으로 비난만 받을 뿐 현실적으로 인정받기 힘든 ‘핵보유국’ 주장을 헌법에 명기한 것은 대내 결속강화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김진무 연구위원은 “북한은 핵개발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며 “핵개발 위업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이어갈 것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개정헌법 전문에 김일성 주석과 김 국방위원장 업적을 나란히 명시한 점도 3대로 내려오는 세습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해 국제사회에 보다 많은 핵 프로그램 폐기 대가를 요구하려는 의도도 담고 있다. 핵 프로그램을 중간에 포기하는 것과 이미 보유한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면서 ‘더 높은 값을 쳐줘야 포기할 수 있다’는 배짱을 부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앞으로 북한은 미국에 대해 핵군축협상을 제기하는 등 핵보유국 대접을 요구할 것”이라면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우리 정부와는 동등하게 회담에 임할 수 없다고 고집하면서 몸값 올리기에 주력할 것이 분명하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노림수가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아무리 헌법에 핵보유국으로 명시했더라도 국제적 공인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양 교수는 “북한은 이전에도 외무성 대변인 담화나 6자회담 등에서 핵보유국이라고 종종 주장해왔다”며 “대내용인 헌법에 명기했다고 해서 큰 변화가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현수 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