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깨닫는 ‘이야기 만들기’의 힘… ‘미니멀 투어 스토리 만들기’

입력 2012-05-31 18:43


미니멀 투어 스토리 만들기/김주연/문학과지성사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에서 문득 잠시 멈추어 돌아보니 깊이와는 무관한 어떤 넓이가 나이와 더불어 조금씩 보인다. 이때 발견된 깨달음이, ‘아 문학은 결국 이야기 만들기구나’ 하는 평범한 인식이다. 따라서 문학은 이제 스토리 만들기와 관련된 모든 직업들을 그 이름으로 껴안을 수 있게 된다.”

올 초까지 3년간 한국문학번역원장으로 재직하며 세계문학 속에 한국문학의 소통과 교류를 위해 복무해 왔던 비평가 김주연(71·사진)씨가 7년 만에 낸 비평집에 쓴 소회이다. 소설가와 시인들의 개인작품론도 인상적이지만 기왕에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지평을 동시에 짚어내야 했던 번역원장 시절의 평론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따르면 한국문학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적인 것’ ‘토속적인 것’이 국제사회에서 이목을 끌 수 있다는 주장 아래 소설가 김동리, 시인 서정주 등이 한국문학의 간판으로 내세워졌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 문화의 급속한 보급과 세계화가 촉진되면서 토속적 고유성을 주장하는 게 과연 얼마나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현저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토속성의 비중이 점차 낮아지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보편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 문제가 점프업 되는데 이때 가장 핵심적인 게 바로 번역의 문제라는 것이다. “모든 분야의 스타일이 평준화되고 있는 세상에 우리의 것과 이웃의 것은 소통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소통을 위한 창의적인 콘텐츠가 많이 만들어지는 일이며, 번역의 질과 기술이 독자중심의 수용층으로 재정립되는 일이다.”(370쪽)

그는 번역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막상 작품이 옮겨지는 나라의 언어, 즉 해당국 독서 소비자들의 언어에 대한 능력을 간과해버린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셰익스피어나 괴테를 우리말로 옮기는데, 그 말이 도대체 우리 말 같지 않아서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다면, 번역은 쓸데없는 문서소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마이너 랭귀지, 즉 소수언어이다. 소수언어는 세계 언어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보호되지 않는 이상 약화되고 퇴화된다. 국가의 개입 없이 소수언어를 매개로 한 한국문학은 세계화를 향한 날갯짓을 펼 수 없을 것이다.”(368쪽)

활자문화 시대에서 영상문화 시대로의 이행을 주시하며 한국문학 안팎을 두루 살펴온 현장 비평들도 흥미롭게 읽힌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