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가를 찾아서] (23) 마가에 의한 복음서

입력 2012-05-31 18:02


“∼복음의 시작이라” 베드로 구술 가감없이 논리적 문체로 서술

나사렛 예수에 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마가의 의견과 그분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아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그분이 곧 다시 오실 것이므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베드로의 생각은 서로 달랐다. 기록이 필요하다는 것을 두고 아마도 그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더듬어 보면 마가가 어떤 반론을 제기했을지도 짐작이 간다.

“열두 분의 제자 중 그 분을 배반한 가롯 유다는 이미 세상에 없습니다.”

“그의 빈 자리에는 맛디아를 뽑아 넣었지.”

“또 야고보님이 돌아가신지도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AD 44년 아그립바 Ⅰ세의 박해로 순교했다.

“주님의 제자는 열두 명만 있는 것이 아니야. 당시에 각 지역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70 명의 제자도 있고.”

“그러나 그분께서 직접 택하신 열두 분 중에서는 이제 열 분만 남아 계십니다. 또 중요한 자리에 늘 동행하셨다는 세 분 중에서는 이미 야고보님이 돌아가셨고, 이제는 선생님과 요한 사도 두 분만 남아 계시는데”

“그럼 충분하지 않나?”

“앞으로 이방인 선교를 계속한다면 유대인들의 핍박이 더 심해질 것이니 선생님이나 요한 사도께서도 무슨 일을 당하실 지 모르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지켜 주시겠지.”

“게다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 제자되신 분들의 기억력도 점점 희미해질 것입니다.”

마가의 논리 속에는 안디옥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던 의사 누가의 의견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고, 베드로는 마가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무시하며 오래 버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베드로가 불러주고 마가가 받아쓰는 마가복음의 기록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이기 때문에 마가복음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학자들이 많이 있다.

“마가복음이 여타의 세 복음서보다 일찍이 제작되었고, 특히 공관 복음으로 불리우는 마태, 누가 두 복음서의 기초 자료로 사용되고 있음은 확실한 사실인 듯 하다.”(고병창 ‘마가복음의 이해’)

마가복음이 베드로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거의 공통된 견해이다.

“마가와 베드로 사이가 조화되지 않거나 무관하다고 하기보다 오히려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최세창 ‘마가복음’)

가이사랴 교회의 감독이었던 유세비우스도 파피아스가 기록한 ‘주님에 대한 해설’을 인용하며 그에 동의하고 있다.

“베드로의 통역자였던 마가는 주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순서적이지는 않지만 조심스럽게 써내려 갔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도 아니했고 그 분을 따라다니지도 아니했기 때문이다.”(유세비우스 ‘교회사’ 3-39)

베른러, 율리허 같은 학자들은 세 개의 공관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 설교자들이 메모 형식으로 지니고 있던 ‘Q 자료’가 있었다고 말한다.

“누가복음 저자가 마가복음의 자료를 사용했다는 것과 마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 또 다른 자료를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그것은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 공히 나오는 자료임이 확인되었다. 이를 학자들은 Quelle(원천)의 첫 글자를 따서 Q라고 부른다.”(나요섭 ‘예수에 관한 첫글 Q’)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마가복음을 읽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느끼는 것은 헬라적 논리에 익숙한 문체와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단순, 명쾌한 베드로적 성품이다. 마가복음은 그 지적인 문체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개인적 감상이나 의견을 거두절미하면서 베드로가 직접 겪거나 들은 것만을 객관적인 묘사로 거침없이 펼쳐나간다. 그것이 곧 사자처럼 독자를 압도하는 마가복음의 박진감이고 능력이다. 그런 마가복음의 특징은 단도직입적인 그 서두에서부터 나타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마가복음이 베드로의 진술을 토대로 기록되었다는 증거가 또 있다. 마가가 평소에 따르고 존경하던 베드로의 인간적 약점과 실패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수께서 장차 당할 고난에 대해 말씀할 때 베드로가 그에 항변하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꾸중을 들었다는 것, 유월절 식사 후 감람원으로 갈 때에 베드로가 저만은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으나 가야바의 집 뜰에서 세 번이나 부인한 것 등이 그것이다. 또 예수께서 마지막 기도를 하고 계실 때 베드로는 졸음을 참지 못해 잠들어 있었다는 대목도 있다. 그의 솔직함에 감동한 마가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도 적어 놓았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 14:51∼52)

마가는 베드로가 구술해 준 것을 가감 없이 기록하면서 자신의 부끄러웠던 지난날의 모습도 기록해 놓았다. 그렇게 하면서 베드로와 마가의 사이는 더욱 가까워졌을 것이고, 마가는 베드로를 아버지처럼 그리고 베드로는 마가를 아들처럼 여기게 되었을 것이다.(벧전 5:13) 마가는 자신의 집 다락방에서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현장에 없었다. 그는 나사렛 예수의 제자들이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 안수할 때 많은 사람들이 성령 받는 것을 목격했으나 그 자신은 아직 그런 체험이 없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구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 적으면서 성령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예수께서 마지막 기도를 하시는 장면에서 그가 쓴 특별한 표현이 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막 14:36)

예수께서 쓰신 ‘아빠(Aββα)’라는 말은 히브리어 ‘엡’의 아람어 형태로 어린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때 이는 아들의 영을 받은 것이며 곧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성령을 받으면 여러 가지 은사가 나타난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의 가장 명백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고전 12:3),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되는 것이다. 마가가 겟세마네의 기도를 받아 적으면서 특히 그 호칭을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것은 그가 나사렛 예수의 말씀을 받아 적으면서 자신도 성령 받았음을 암시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그는 다시 베드로의 증언을 받아 적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 16:19)

그리고 마가는 이 역사적 기록의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일하여 장엄한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어 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적어놓고 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막 16:20)

그리고 서두 부분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헬라 학문의 정수인 수학에서 학자들이 이론을 증명한 후 사용하는 ‘이렇게 확실히 증명하였다(Q.E.D.)’와 동일한 표현으로 연결하며 끝을 맺고 있다.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그렇게 해서 ‘유앙겔리온 카타 마르콘’ 즉 ‘마가에 의한 복음서’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벅찬 감동 속에 베드로의 진술을 다 받아 적어 놓고 마가가 갈대 붓을 놓으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그에게 말했다.

“아들아, 나를 위해 한 가지 일을 더 해주었으면 한다.”

김성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