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선이] 희망의 씨앗 뿌리기
입력 2012-05-30 18:22
20여 년 전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와 인연이 되어 독서운동을 하게 되었다. 캄캄한 미로를 헤매는 것 같던 청소년기에 나를 붙들어 준 것이 책이었기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교과서만 공부한 아이들은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믿었다. 지식인은 될지 몰라도 참다운 지성을 갖출 수는 없을 테니까.
사람 공부는 등한히 하고 성적만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불만이 많았던 나는 학교 공부와 직접 관계가 없는 책들을 읽히는 일에 신이 났다. 한우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독서지도사’ 교육과정을 열고, 자격시험까지 통과한 선생님들이 소그룹 형태의 독서클럽을 이끌도록 했다. 몇몇 연구원들과 매일 밤늦도록 독서지도 프로그램을 연구하며 자료를 개발했다. 기본 원칙은 책을 친구로 만들어 주기, 정답 맞히기형 문제 대신 무엇이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였다.
이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계속 만들어야 했다. 새로운 책을 찾고, 좋은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며, 읽고 나서 토의·토론 등을 통해 확산적 사고를 도왔다. 아이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답을 요구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했고, 책 속에 재미있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이다.
일을 시작한 지 3년쯤 되었을 때, 연구회 활동을 하던 몇몇 선생님들에게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독서지도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두 분이 흔쾌히 동의해 어느 보육원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그곳 원장은 “이제는 물질적인 도움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펴주고 정신적인 힘을 주는 봉사가 꼭 필요하다”며 반겨주셨다.
그렇게 시작된 ‘한우리 독서지도 봉사단’이 16년을 맞았다.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상처 받은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삶에 의욕과 희망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절대적 결핍으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꿈을 꾸지 못한다. 성경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꿈이 없는 사람 역시 망하고 만다. 목표가 없어 방황하며 되는 대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봉사단은 아이들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책 속에 담긴 양식에 선생님들의 사랑을 섞어 아이들에게 먹이다 보면 조금씩 마음 밭이 부드러워지며 싹이 자라나오기 시작한다. 지금은 보육원, 소년원, 빈곤지역 아동센터 등 33곳에서 매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선생님들 가운데 10년 넘게 자원봉사하시는 분도 많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정성껏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다보면 조금씩 싹이 나고 힘 있게 자라나겠지. 그런 인내심과 믿음으로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계속 가보는 거다. 한 아이, 한 아이 모두 꽃으로 피어나기를 소망하면서.
박선이 해와나무출판사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