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진영] 포스코를 보는 눈

입력 2012-05-30 21:46


“정권이 바뀌면 늘 되풀이되는 악몽, 그러나 책임지는 사람 없는 현실 우려돼”

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포스코 임직원들을 만나면 여타 대기업 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예의바른 가운데서도 당당함,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일 때문에 만났던 홍보 분야 임직원들은 물론이고 타 부서에 근무하는 학교 선후배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느낌은 포항제철소를 방문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압도될 만한 규모의 설비, 감탄을 자아내는 자동화 시스템과 친환경적 공정 등을 소개하는 안내자의 목소리는 힘이 있다. 특히 창업정신이 녹아있는 역사관이나 기록영화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자긍심은 더 높아 보인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다른 기업을 방문했을 때는 감지할 수 없는 분위기다.

왜 이럴까. 무엇보다 ‘철로써 국가산업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제철보국’의 창업정신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 아닐까. 아울러 국가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되는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을 견인한다는 자신감도 한몫하는 듯하다. ‘인재제일’ ‘인화’ ‘합리주의’ ‘1등주의’ 등을 내세우는 다른 기업들과 ‘보국’과 ‘우향우 정신’을 모토로 하는 기업의 구성원의 자세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향우 정신’은 악천후, 자금부족 등으로 포항제철소를 제대로 건립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이자 제때 완공하지 못하면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 영일만에 빠져 죽자는 결의가 담긴 강고한 다짐이다.

그런 까닭에 국민들 눈에는 포스코가 신뢰할 수 있는 듬직한 형처럼 각인되는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는 민영화된 지 10년이 넘은 포스코를 아직도 공기업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포스코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호의적이다.

그런데 이 포스코가 20여년 전, 고 박태준 명예회장 퇴임 이후부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적으로 홍역을 치른다. 포스코를 ‘1급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새 정권의 외압과 이에대한 포스코 수뇌부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박 명예회장이 1992년 10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 후보와의 갈등으로 뜬금없이 수뢰혐의를 받고 물러난 후 회장이 된 인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 자리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본인이 자초했든 그렇지 않든 포스코 회장 자리는 잊을 만하면 국민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제공했다.

지금의 정준양 회장도 마찬가지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윤석만 전 포스코사장과 회장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다. 윤 전 사장이 내정됐는데 정 회장이 뒤집기를 했다느니, 윤 전 사장이 특정 언론에 제보를 해 정 회장의 부적격 사유를 크게 보도토록 했다는 등의 풍설이 파다했다.

문제는 지금의 시련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외 철강 시장 사정이 형편없다. 수요는 줄고 공급은 넘치는 상황에서 중국 제품의 저가 공세는 극심하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S&P는 포스코의 영업실적 개선이 제한적이라고 전제하고 장기기업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진단했다. 경영부실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경쟁업체인 신일본제철은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시장외적 형편도 어렵다. 파이시티를 수사하는 검찰의 칼끝이 포스코를 겨냥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올해 말이면 새 대통령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누가 권력을 잡든 그동안 새 정부의 전리품으로 여겨졌던 포스코에 눈독을 들일 가능성이 높다. 또 현 경영진은 새 정부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몸부림 칠 것이다. 다행히(?) 이해관계가 맞으면 풍파가 적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검찰과 국세청 등을 동원한 정권의 압박이 시작되고 포스코는 또 한번 요동치게 된다. 수십 년 동안 여러 번 봤던 장면이 그대로 재현되는 셈이다.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는 과정에서 자긍심 높은 포스코 직원들의 마음은 불편해지고, 국민기업이라며 박수치던 국민들은 불안해한다. 무엇보다 포스코의 가치는 뚝 떨어진다. 그러나 정말 희한한 것은 이런 사태가 되풀이돼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진영 카피리더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