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와인 인터넷 판매 허용땐 “청소년 음주 조장” 비판 고조
입력 2012-05-29 10:15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가격인하 효과만 노려 수입와인의 인터넷 판매를 허용할 것으로 29일 알려지면서 청소년 음주문화 조장 등 비판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 건강을 최우선시해야 할 정부가 시장논리에 매몰돼 술 판매를 독려하는 것도 문제인데다 탈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공정사회 기치를 정부 스스로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와인의 인터넷 판매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초부터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FTA에 따른 관세폐지 품목 중 가격을 인하하지 않은 품목을 점검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대표적인 품목으로 와인을 거론했다.
실제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11월 조사한 결과 한·칠레 FTA 발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팔리는 칠레산 와인이 18개국 주요도시 중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이를 국내 유통단계의 복잡성 때문이라고 보고 인터넷 판매로 가격 인하 효과 극대화를 꾀하겠다고 밝혔다.
FTA 확대를 현 정부 경제 업적으로 여기고 있는 청와대도 공정위 복안을 거들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FTA 효과를 국민이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일부 업자들의 독과점 탓인 것 같다”며 “공정위 등이 집중 연구해 조치하라”고 주문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청와대 중재로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 실무진이 내부 조율을 거쳤다”고 말했다. 빠르면 다음달 내 고시개정을 통해 와인 인터넷 판매가 가시화될 조짐이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유통구조 개선 노력 없이 정부가 청소년 등 불특정 다수가 접속하는 인터넷 판매부터 곧바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교회언론회 사무총장 이병대 목사는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음주 문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정부 정책에 반대했다. 이 목사는 “그렇지 않아도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인데 인터넷 판매를 허용한다면 알코올 중독자들이 늘고 사회적 문제와 비용이 증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형평성과 정책의 우선순위 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알코올 도수가 12∼14%에 달하는 와인의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면 맥주·소주의 인터넷 판매도 막을 근거가 없어진다. 와인 가격을 낮추게 하려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세금 체계를 먼저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와인 가격에서 세금 비중은 70%(수입가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판매가 가능해지면 영세업체나 개인들의 와인 무자료 거래(세금계산서 없이 상거래를 하는 것)가 급증하고 탈세가 난무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고세욱 유영대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