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배의 말씀으로 푸는 건강] 치료 받는 이유

입력 2012-05-29 20:14


동갑이라는 인연 외에는 한 번 뵌 적도 없는 심순덕 시인이 우리 어머니 평생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요? 시인의 작품 하나를 옮겨봅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 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앞에서 아프다고 말못해”

허리나 관절 등 근골격계 질환을 다루다보니 주로 노인 분들의 퇴행성 질병을 대하게 됩니다. 한치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처럼 완치는 고사하고 질병의 진행을 멈추게 하며 거동에 불편치 않을 만큼의 통증 조절도 쉽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참말로 죽었으면 좋겠데이. 미덥다고 원장님한테 별 소릴 다한다. 후손이 안 좋다케. 내 그래서 참는데이.” 쇠약해진 몸으로 지팡이에 의지해 진료실을 찾는 여든 넘으신 할머니의 푸념입니다.

몇 년 째 들르시는 순덕이 할머니는 아픈 다리를 내놓으며 “명절에 아∼들 왔는데 아프다고 누웠을 수 있나. 절므니들도 있고, 다문 메칠이라도 안 아프게 해 주이소”하십니다. 오랜만에 보는 자녀들 앞에서 아픈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미리미리 치료 받으러 오시는 겁니다.

자녀들 성화에 떠나는 어버이날이나 여름휴가 여행 때도 노인들은 일찌감치 병원에 들러 단도리 해야 합니다. 주사나 물리치료로, 하다못해 며칠 분의 약이라도 준비하셔야 합니다. 산으로 바다로 좋은 곳으로 노인들 모시고 가려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아픈 무릎으로 허리로 젊은 사람들 보조맞추려니 예삿일이 아닙니다.

이 몸 10년은 더 써야하는데…

강원도로 이사 가시는 흰머리 내린 초로의 부부가 들렀습니다. “원장님 덕에 그동안 잘 벌어묵고 살았심더. 아플 때 마다 잘 낫게 해줘서 바로바로 일할 수 있었다 아입니꺼. 앞으로 아이들 다 키울라면 10년은 더 써묵어야 되는데 걱정이네요.” 감사에 기쁠 뿐 아니라 치료조차 온전히 자신을 위해 받지 못하는 당신들의 헌신에 마음이 짠해집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롬 14:7)”는 말씀은 얼마나 진리인지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도리와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는 축복의 말씀이 짝을 이루는 연유를, 아비가 되고 숱한 밤 지새우고서야 비로소 조금 알 듯도 합니다. 그래 저도 시인을 흉내내 봅니다. ‘자식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은혜, 당연한 것으로 여겨도/ 자식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노인이면 아픈 게 당연하려니 생각해도/ 자식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바쁜 세상에 그저 용돈이나 보내드리면 되려니 해도/ 자식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제 자식 귀한데 취해 노인들은 뒷전으로 밀쳐두어도/ 진료실에서 마주한, 치료조차 오롯이 당신을 위해 받을 수 없는 부모님들을 대하곤, 아! 자식은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대구 동아신경외과 원장·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