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뉴욕공공도서관
입력 2012-05-29 18:28
출판전문지 ‘출판저널’은 매월 이달의 책을 선정하는데, 지난 4월에 발표된 ‘세계 도서관 기행’(유종필 지음)은 좀 의외였다. ‘인류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도서관부터 보르헤스의 숨결이 남아있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까지 세계 50곳에 대한 탐방기’라고 했지만 초판이 아닌데다 저자 또한 정치인이라 식상했다.
조심스레 책을 펼쳤더니 2010년에 낸 초판이 1만부 팔렸으며 올 2월에 남미를 비롯한 4개국 6곳의 도서관을 추가해 개정증보판을 출간했다는 서지 정보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용이 빵빵했다. 현직 구청장인 저자는 흔히 잠시 쉬었다 가는 국회도서관장 자리를 활용해 제대로 된 도서관 답사기를 낸 것이다. 지난 3월에는 대만에서 번역됐을 정도다.
도서관을 다룬 책이 많다는 것은 건강한 징표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쓴 ‘밤의 도서관’은 도서관의 역사와 일화를 모았다. ‘히말라야 도서관’은 마이크로소프트사 임원이 저개발국가에 3000개 도서관을 지으면서 마음의 양식을 공급하는 내용이다. 부산대 최정태 교수는 ‘지상의 위대한 도서관’을 냈으며 ‘유럽도서관에서 길을 묻다’ ‘북미학교도서관을 가다’는 교사들의 관찰이 담겨있다.
이런 책의 공통점은 도서관을 ‘지성의 성지’ 혹은 ‘불멸의 로망’으로 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뉴욕공공도서관(NYPL)이다. 1911년 개관 이후 주제별 도서관이 4개, 지역별 분관이 83개, 이용자는 연간 1600만 명에 이른다. 시민의 일상과 밀착된 곳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이곳에서 일자리를 소개받아 시카고 지역커뮤니티로 갔다는 일화가 있다.
NYPL 본관 중앙홀의 장미열람실은 영화 ‘섹스 앤더 시티’의 촬영장으로 유명하다. 이 열람실 입구에는 ‘실락원’의 저자 존 밀턴의 명구 “좋은 책은 영혼의 보혈이니, 영원히 잊히지 않도록 소중하게 여길 지어다”가 고어 그대로 새겨져 있다. 천장 높은 이 곳의 고색창연한 책상에서 책을 읽으면 저마다 지식의 키가 한 뼘 커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
100년 역사의 NYPL이 책의 보존을 놓고 논쟁에 휩싸였다고 한다. 재개발에 맞춰 300만권에 달하는 장서의 절반을 뉴저지 창고로 빼내기로 하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등 학자 1000여명이 “가슴이 찢어진다”며 반대 청원을 한 것이다. 전자책과 인터넷 확산 등 도서관을 둘러싼 환경변화에 NYPL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책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주시하고 있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