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경아] 플라워쇼, 관람보다 즐김을!

입력 2012-05-29 18:33


5월부터 10월까지 영국은 대대적인 플라워쇼 기간이다. 국가적인 대규모 행사도 있지만 시골 마을별로 자신이 직접 키운 꽃과 채소, 과일을 전시하고 상을 주며 즐거운 축제를 여는 행사가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다.

이 플라워쇼가 우리 식의 박람회라기보다는 축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건, 정원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자세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정원 디자인을 배우며 지냈던 유학시절, 내가 살았던 마을 인게이트스톤은 영국인들도 그곳이 어디냐고 되묻곤 했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다. 그런데 어느 7월의 여름, 100m도 채 안 되는 마을의 중앙길에 작은 현수막이 걸렸다. 일요일에 플라워쇼가 개최되니 많이 와서 구경하라는 문구였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플라워쇼가 열리다니? 일요일에 마을의 가장 큰 공원을 찾으니 하얀 이동용 텐트가 군데군데 쳐 있고 브라스밴드의 재즈 음악이 울려 퍼졌다. 텐트 안에 전시된 꽃과 채소, 과일 등은 모두 마을 사람들이 직접 재배한 품종들로 유난히 잘 키운 호박엔 금박이 붙어 있는 골드메달이 걸려 있고 라벤더, 달리아 등 꽃들에도 메달이 걸려 잔뜩 뽐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작은 텐트 하나하나엔 마을 할머니들의 핸드 메이드 제품이 가득했다. 일명 크리스틴 할머니표 빅토리안 케이크, 닉 아저씨표 햄과 소시지, 세라 아주머니의 잼 등이 저렴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이웃 마을에서 참여한 분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한 마을 사람들이고 서로 수십 년 지기의 이웃사촌인지라 인사가 더 장황했다. 서둘러 돌아보고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피크닉 의자와 돗자리를 깔고 그늘에서 음악을 들으며 하루 종일 플라워쇼를 즐기고 있었다.

5월 셋째 주, 영국에서는 ‘챌시플라워쇼’라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플라워쇼가 열린다. 원예, 정원쇼로 수많은 원예품종 개량가들이 그해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출현하는 신품종을 발표하고, 세계적인 가든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디자인 역량을 보여주는 장이다.

관람객 한 명이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고려해 발행하는 15만7000장의 표는 이미 석 달 전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그런데 이런 세계적인 플라워쇼를 만들 수 있었던 데에는 인게이트스톤과 같은 시골 마을의 정원문화 즐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게도 요즘 ‘꽃박람회’라는 이름으로 원예, 정원 행사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진정한 즐김의 문화라기보다 인파를 뚫고 관람에 급급할 정도로 빠듯하기만 하다. 참여업체가 얼마나 많았는지, 얼마나 너른 부지에서 개최했는지, 몇 명이 모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진정으로 정원문화를 즐길 수 있는 플라워쇼였는지가 우리에겐 더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챌시플라워쇼도 더할 나위 없지만 내가 살았던 시골 마을의 플라워쇼가 더 부럽다.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