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은 왜 새벽에 타결될까… 협상 최선 대외 메시지, 손해 본쪽 체면 세우기
입력 2012-05-28 19:17
바야흐로 정상회담의 계절이다. 최근에도 일주일 새 주요 8개국(G8),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유럽연합(EU) 정상회담 등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숨 가쁘게 진행됐다. 각국 정상들은 측근이나 가족보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정도다. 정상회담 참여 지도자도 가파르게 늘어 ‘정상회담이 정상에 이르렀다’는 우스개가 나오는 시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비서실장을 지낸 조나단 파월이 영국 일간 가디언 27일자에 정상회담의 정치학에 대해 기고했다.
“친밀한 관계에 있으면 좀 더 봐주지 않겠어요?” 데이비드 밀리번드 전 영국 외무장관은 정상회담의 이점으로 개인적 신뢰 형성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 제고를 꼽는다. 친밀함은 때로 무례함을 초래할 수 있어 반드시 좋은 것만이 아닐 때도 있다.
일단 정상회담이 시작되면 TV카메라는 꺼지고 문은 닫히며 측근들은 내보내진다. 관료들 간섭 없이 그들끼리만 있게 함으로써 쟁점 합의에 쉽게 도달하게 하자는 취지다. 이 때문에 수행단원들은 안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자 브리핑용으로 회의내용을 메모해 슬쩍 바깥에 전해준 적도 있다.
애초 6명으로 시작한 EU정상회담 참가자는 이제 27명이다. 그러다보니 헤르만 반롬푀이 EU상임의장의 영향력이 커졌다. 측근은 그가 창의성을 발휘해 모든 사람이 뭔가를 얻는 결과를 도출하려 애쓴다고 귀띔했다. 모두가 우승상을 받는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서의 코커스 경기를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정상회담은 왜 늘 새벽 3, 4시 무렵에 타결되는 것일까. 회의 주재국에서 협상 양측이 완전히 지쳐서 떨어져나가도록 자정까지는 핵심문제를 건드리지 않아서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기자회견도 물론 새벽 4시다. 이는 협상에서 진 국가의 체면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티타임 회의에서 양보를 하기보다 새벽까지 쟁점을 갖고 싸우다 졌다고 자국 언론에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이 중요해진 배경에는 세계화가 있다. 경제 국경이 사라지면서 한 국가의 정책 결정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좌우되는 경향이 높아졌다. 그리스 지원 문제를 논의하는 EU정상회담은 그래서 외교회담이 아니라 바로 국내정책 관련 회담인 셈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