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케케묵은 이념의 포로들
입력 2012-05-28 18:13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지낸 이정희씨의 자전적 에세이 ‘내 마음 같은 그녀’에는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대학교 1학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냉면을 먹어봤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다는 것, 슬럼프에 빠지면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를 찾아 읽는다는 것, 좌우명은 ‘착하게 살자’라는 것 등등. 그가 ‘진보의 아이유’로 불린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
여전히 北 맹신하는 그들
하지만 통진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과 폭력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 책 내용의 진실성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나아가 주사파 특유의 위장술일 수 있다는 의문마저 생겼다. 그는 구당권파다. 주사파 또는 김일성주의자로 불리는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와 같은 그룹이다. 북한 3대 세습과 핵문제 등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피하고 있는 점도 같다.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현실과 그런 만행을 저지른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정권에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주출(주사파 출신) 국회의원’ 탄생을 앞두고 진보진영 전체가 엄청난 욕을 먹고 있고 자신이 이끌던 정당이 내홍에 휩싸였음에도 이씨는 침묵으로 끈끈한 동지애(?)를 발휘하고 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통진당 창당 과정이 북한 지령과 거의 일치하고, 주사파가 대한민국을 북한 왕조와 유사한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와 증언들이 잇따랐다. 실제 그들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연대를 통해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낸 데 이어 올 대선에서 민주당과 공동정권을 세워 그 한 축을 담당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종북 세력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김정일 사망 100일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3월 24일 밀입북한 뒤 지금까지 북한 곳곳을 돌아다니며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면서 남측 정부에 대해선 저주를 쏟아내는 이도 있다. 뿐만 아니라 통진당 폭력사태 때 드러난 ‘이석기 키즈’에서 보듯 젊은층에서도 종북 세력이 커가고 있다. 주사파가 은밀하게 수십년 간 이 땅에서 세를 늘려온 결과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우리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지탄받는 북한 체제를 맹종하고 있으니 그들은 변종(變種)이다. 국민들이 호되게 나무라도 금배지를 달고야 말겠다는 아집에서 그들의 안중에 국민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용인할 수 없다. 그들의 오판으로 자칫 우리 국민들의 안전이 심대하게 위협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이념이지, 이념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주사파는 이념을 위해 한번뿐인 삶을 허비하고 있다. 북한 체제의 실상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핵노름, 무자비한 인권탄압, 무력도발은 북한 정권의 상징어다. 주사파가 신봉하는 이념이라는 게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낡아빠진 것이라는 얘기다.
분단의 장기화도 한 요인
‘철지난 이념’이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데에는 남북분단의 장기화도 한 요인일 듯싶다. 과거 남쪽 위정자들이 대치상태를 집권 전략으로 활용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이들 가운데 일부가 북쪽에 포섭돼 세뇌당한 뒤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 이따금 그들도 굴곡진 우리 역사의 피해자라고 여겨지는 이유다. 북한 정권마저 속으로는 그들을 ‘쓸모 있는 바보들’ 정도로 간주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케케묵은 이념의 포로가 돼 버린 그들을 보면서 새삼 분단을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