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다윗과 골리앗
입력 2012-05-28 18:11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맞짱을 뜨자고 요구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일을 조석으로 나와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한다. 이스라엘 군대는 기골이 장대한 골리앗을 보고 전의를 상실한다. 그때 목동 다윗이 나타나 골리앗에 맞선다. 물매를 이용해 돌을 던져 골리앗을 죽이고, 골리앗의 칼을 빼들어 머리를 자른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귀에 익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다. 다윗과 골리앗을 다룬 어린이 책이 많이 나왔고, 교회 어린이들을 위한 설교 소재로 자주 채택되는 이야깃거리이기도 하다. 화가들도 다윗과 골리앗을 단골 메뉴로 택했다. 미켈란젤로(1475∼1564)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반월형 벽면에 프레스코화로 ‘다윗과 골리앗’을 그렸다. 이 작품은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뒤 그 위에 올라타 칼로 골리앗의 목을 내려치려는 장면을 담고 있다. 렘브란트(1606∼1669)는 유화 ‘골리앗의 머리를 사울 왕에 넘기는 다윗’을 후세에 남겼다.
지난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격돌한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를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으로 묘사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손 후보가 패배함으로써 그를 다윗에 비유한 것은 결과적으로 틀린 셈이 됐다.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의 대결구도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평가했다. 아마도 힘겨운 싸움임을 강조한 것이리라. 그러나 임 전 실장이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다면 스스로를 다윗이라고 칭한 것을 물러야 할 것 같다. 알다시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승자는 다윗 아닌가.
남중국해 황옌다오(黃巖島)를 둘러싼 필리핀과 중국의 영유권 분쟁을 언론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표현한다. 군사력, 경제력, 인구 등 국력에서 중국 상대가 되지 않는 필리핀이 버티는 것은 미국이 뒷배를 봐주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 강제징용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낸 최봉태 변호사는 골리앗을 꺾은 다윗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유명 로펌 소속도 아닌 최 변호사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을 상대로 1·2심에서 내리 패소했지만 대법원에서 승소했기 때문이다. 12년간의 ‘혈투’에서 한국의 사법주권 등을 내세워 승소한 최 변호사. 정의의 편에 서서 약자를 보듬는 제2, 제3의 최 변호사가 나오길 기대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