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료사고로 年4만명 사망’ 발표한 이상일 교수 “감추기 급급한 의료사고 근절 되겠나”
입력 2012-05-28 11:34
“의료 사고는 병원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발생하므로 환자와 가족은 그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고를 의료진의 실수나 잘못이라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현대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발표는 이런 환자안전사고, 특히 의료인의 뜻하지 않은 과오로 일어나는 불상사를 막아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2012 병원의료정책 심포지엄’에서 국내 병원의 의료사고로 연간 4만명가량(추정치)이 사망한다는 내용을 발표한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52·사진) 교수의 말이다(24일자 본보 1·3면 참조).
이 교수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의료사고 발생 현황을 추계할 때 적용한 수치들은 의료의 질과 안전이란 뜻의 학술지 ‘퀄리티 앤드 세이프티 인 헬스 케어’(2008) 제17권 216∼223쪽의 중앙값과 제1, 3 사분위수를 활용한 것이다. 조사 신뢰도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본보 보도 후 일각의 신뢰도 비판을 일축했다.
그 결과 국내 의료사고 경험자는 전체 입원 환자 574만여명 가운데 9.2%(4.6∼12.4%)인 52만여명, 의료사고에 따른 사망 가능성은 이 중 7.4%(4.7∼14.2%)인 3만9000여명인 것으로 산정됐다. 사후 대응을 잘 했다면 살았을 것으로 보는 ‘예방 가능 사망자’는 43.5%인 1만7000여명이었다.
참고로 세계보건기구(WHO)가 200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의료사고에 의한 사망자 발생률이 3.2∼5.4%, 영국은 11.7%, 덴마크는 9%, 캐나다는 7.5%로 각각 조사돼 있다. 호주는 연구자에 따라 적게는 10.6%에서 많게는 16.6%까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국내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 규모를 한 번도 정확하게 파악한 적이 없어 이런 외국 자료를 차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면 직무유기이고,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무사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일어나는 환자안전사고를 줄이려면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 이 교수는 “우선 항공사고의 경우처럼 사망 혹은 심각한 위해를 초래한 사건에 대해서는 보고를 의무화하고, 경미한 안전사고 또는 발생할 뻔했던 사건도 자발적 보고를 하도록 장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물론 이런 환자안전 개선활동에 대해선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 실제 미국의 경우 2005년 환자안전 및 의료 질 향상법을 제정, 의료기관의 환자안전 보호 및 개선 활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의료기관들이 보고한 사건들은 근본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동일 또는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항공사고의 경우 사고 후 블랙박스까지 분석해 가며 원인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해 그 경험을 즉각 공유하는데 의료사고는 무조건 쉬쉬하며 감추기에 급급해 똑같은 실수와 잘못,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