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삶의 풍경] 비 오는 날

입력 2012-05-27 18:21


비오는 날 걸으면 세상을 얻습니다. 살금살금 비가 내리면 옛 사랑의 희미한 그림자가 보이지요. 언제부턴가 백로는 비를 맞으며 졸고 있습니다. 수수꽃다리는 아름다운 향기로 유혹합니다. 명자나무 꽃들이 와아∼ 하고 터지는 날 명자나무를 쓴 장석주 시인이 되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꺼이꺼이 울어도 좋을 나이. 그리고 울음은 비로 변하지요. 비처럼 내리는 눈물을 가슴에서 토해내는 그 순간 더 이상 울 장소를 찾을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오리 부부는 나를 슬프게 하네요. 걷고 있는 나를 침입자로 오해해 아내를 보호하는 행위가 거의 기절할 수준이지요?

인간은 더러 비열함의 상징이 된지 오랩니다. 씀바귀꽃 하늘하늘, 노랑붓꽃과 각시붓꽃의 차이는 인간과 동물 아무것도 아니지요? 비를 맞으며 눈물을 훔칩니다. 그러면 희미한 옛사랑이 찾아오고 달갑던 그대가 말을 걸어오지요. 더 이상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비와 함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조촐한 시간입니다. 비는 모처럼 모두를 기억하게 하네요.

그림·글=김영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