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황태순] 누가 네거티브를 두려워하랴

입력 2012-05-27 18:14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이 뿔났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이 ‘박근혜와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의 접촉설’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은 박태규를 만난 적이 없다며 박지원 위원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그런데 정작 고소를 당한 박지원 위원장은 이기죽거리며 즐기는 표정이 역력하다. 정치판에서 풀어야 할 문제를 너무 쉽게 법정으로 끌고 간 것이다. 지루한 법정공방을 통해서 이겨봤자 국민들의 뇌리 속에 남는 것은 ‘박근혜-박태규’뿐이다. 박지원의 덫에 박근혜가 걸려들었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흑색선전·마타도어는 금물

공이 검찰로 넘어갔으니 팩트(fact)에 근거해 조속히 진실공방에 종지부를 찍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 팩트라는 게 묘한 구석이 있다. 박지원 위원장은 “박근혜 전 위원장과 로비스트 박태규가 수차례 만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인사가 있으며 그 녹취록을 갖고 있다”고 했을 뿐이다. 즉 박지원 자신이 박근혜-박태규가 만났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만남을 잘 알고 있는 어떤 인사가 있고 그 사람이 말한 것이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꼼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가슴을 칠 수밖에 없다.

팩트의 더욱 묘한 구석은 만남이 어떤 만남이냐는 것이다. 박근혜 전 위원장은 ‘두 사람이 로비 차원에서 만났고 그 결과 박근혜 전 위원장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 같다. 하지만 대중정치인이요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 전 위원장은 이런저런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또 어떤 행사장에 박 전 위원장과 박태규 모두 참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만남도 만남은 만남이다. 당하는 측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즐기며 공격하는 측에서는 이처럼 재미나는 논리게임이 없을 것이다.

유권자의 표를 먹고사는 대중정치인에게 네거티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국민들의 지지를 놓고 함께 다투는 상대방이 있고, 그 상대방은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 집요하게 나의 약점과 빈틈을 끄집어내고 폭로하려고 든다. 현행 공직선거법 58조도 선거운동을 ‘(내가) 당선되거나 (남을) 당선되게 하거나 (남이) 당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상대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하는 것 또한 적법하다는 취지다.

합리적 의혹과 구별해야

네거티브와 흑색선전, 마타도어는 확실하게 구분돼야 한다. 과거 대선판을 흔들었던 ‘김대업 류의 흑색선전’이나 ‘아니면 말고 식의 마타도어’는 철저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서 품을 수도 있는 ‘합리적 의혹’을 제기하는 네거티브마저 피할 수는 없다. 일반 국민들은 각 후보들에 대한 정보접근에 한계가 있다. 치장하고 분장하고 분식하여 자신의 멋진 모습만을 보여주려는 후보의 속살을 들여다보기란 정말 어렵다. 결국 상대후보 측에서 제공하는 각종 의심과 의혹을 판단의 또 다른 기준으로 삼게 마련이다.

지난 2000년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상당수 공직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후보자들은 청문위원들의 추상같은 질문뿐 아니라 제기된 수많은 의혹에 대해서 일일이 답변하고 해명하는 곤욕을 치르고서야 국무총리, 장관에 임명됐다. 청문위원들의 의혹 제기가 전형적인 네거티브 검증이다. 대통령이든 기초의원이든 모름지기 선출직 공직자가 되려면 ‘합리적 의혹과 의심’을 충분히 해소시킬 정도의 소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괜스레 남의 의심을 사는 일을 피하는)’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이 공직을 맡겠다는 사람의 평소 생활 기준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12월 19일 대통령선거까지 6개월여 남았다. 또다시 실패한 대통령을 뽑지 않기 위해서 철저한 검증,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통용되고 있는 네거티브 검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물론 네거티브 검증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흑색선전과 마타도어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