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양기호] 소비세율 인상과 일본정국
입력 2012-05-27 18:14
일본정치의 관심이 소비세 증세법안에 쏠려 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법안 개정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유지보다 소비세 증세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할 정도다. 소비세 특위를 설치해 국회에서 본격 심의하는 것 자체가 18년 만이다. 일본정부와 민주당 제안은 현행 5% 소비세를 2014년 8%로, 2015년 10%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소비세 최고세율을 더 올리고, 상속세를 늘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유럽선진국처럼 간접세인 소비세를 더 걷어서 복지비용을 충당한다는 것이다.
일본 국가재정은 적자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채잔고 비율을 보면 일본은 선진국에서 가장 높다. 독일 79%, 프랑스 89%, 미국 107%인데 비하여 일본은 무려 236%에 달하고 있다. 2009년도 일본의 총국가부채는 1019조엔, 자산합계는 647조엔이다. 일본 전체가 372조엔의 빚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1990년대 이래 경기침체로 세수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다. 반면,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의료비와 연금 지급분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적극 밀어붙이는 집권당
일본의 소비세율은 유럽이나 아시아국가의 부가가치세와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낮다. 유럽각국의 평균 세율은 20%를 넘는다. 중국이나 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7개국 평균세율은 10%수준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의료와 연금 등 사회복지비가 팽창하는데, 적자국채로 메우다 보면 다음 세대에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국민 누구나 부담하고 걷기 쉬운 소비세를 인상해 재정파탄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법안의 취지다.
그러나 반대가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저소득층에 적지 않은 부담을 지우게 된다는 것이다. 소비세는 의료비나 수업료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 상품과 서비스에 부과된다. 단순계산으로도 5%이상 가계지출이 늘어난다. 격차사회 일본의 현실은 심각하다. 경제대국임에도 가족이 한꺼번에 기아로 죽는 고립사가 잇따르고 있다. 사망자의 소지품이 수십엔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취업하지 못해 100엔숍 상품으로 생활하는 청장년층도 적지 않다. 생활보호비를 받는 세대도 매년 숫자를 경신하고 있다.
소비세는 간접세로 소득이 낮을수록 부담감을 더 느끼게 된다. 유럽도 소비세가 빈곤층 생활을 압박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영국은 부가가치세가 20%이지만 식료품이나 의약품은 아예 세금이 제로이다. 햄버거를 먹어도 매장 안에서 먹으면 세율이 높고, 나가서 먹으면 세율이 낮다. 그러나 구체적인 항목을 하나하나 정하기 어렵고 과정도 복잡하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이 방식에 반대하고 있다. 2014년 8%로 소비세를 올려서 8조엔 정도 세수를 늘리고, 대신 저소득층에게 4000억엔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회 해산과 총선거 가능성
소비세 증세에 대한 여론은 찬성 39%, 반대 51%로 여전히 장벽이 높다. 야당도 시큰둥하거나 적극 반대다. 자민당은 소비세 증세는 동의하나 국회 해산과 총선거 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공명당은 정부가 먼저 뼈를 깎아 낭비를 줄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인층과 샐러리맨 가계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소비세 증세로 오히려 경기가 침체하여 디플레가 가속되고 결국 세수감소로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내조차도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는 선거공약 위반이라고 엇박자를 놓고 있다. 소비세 증세 법안이 민주당 이 과반수인 중의원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야당이 다수인 참의원을 통과하기는 기대난망이다. 정 안되면 국회해산과 총선거를 각오해야 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