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청춘의 우상 빅또르 뻴레빈 장편소설 ‘오몬 라’… 냉전시대! 진실을 지탱한 거짓
입력 2012-05-25 18:14
러시아 작가 빅또르 뻴레빈(50)의 첫 장편이자 출세작인 ‘오몬 라’(고즈윈)는 인간이 어떻게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에 관해 들려준다. 옛 소련이 해체되기 한 해 전인 1990년 쓰인 ‘오몬 라’는 1992년 발매되자마자 젊은 독자층에게 활력을 일으켰고, 당시 서른 살의 작가 뻴레빈은 일약 스타가 됐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인 ‘오몬’은 러시아어로 ‘경찰특수부대’의 약자다. 경찰이 돼 출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현직 경찰인 주인공의 아버지가 지어 준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하늘에 대한 동경’에서부터 시작한 오몬의 꿈은 점차 전투기 비행사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구체화된다. 그 열망은 그를 우주의 아득한 심연으로 나아가는 환상으로 이끈다.
“그의 헬멧 유리는 검은색으로, 삼각형의 반사광이 환하게 언뜻언뜻 번득일 뿐이지만, 나는 그가 나를 볼 수 있음을 알았다. 그는 어언 몇 세기 동안 쭉 죽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확신에 찬 태도로 팔은 별을 향해 뻗고, 두 다리는 너무도 당연히 아무 지지도 필요로 하지 않아서,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무중력뿐임을 영원히 절감했다.”(18쪽)
오몬은 모스크바 ‘국민경제 달성 박람회장’에서 만난 친구 미쪽과 함께 항공학교에 입학해 우주비행사의 꿈을 본격적으로 키워 나간다. 하지만 비행 책임자는 오몬에게 감당할 수 없는 애국심을 고취시킨다. “역설은―이 또한 변증법의 일면인데―우리가 거짓으로 진실을 지탱한다는 데 있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정복하는 진실을 안에 담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자네가 목숨을 바쳐 추구하게 될 그 목표라는 건 형식적으로는 일종의 거짓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것은 그대가 영웅이 되기 위해….”(73쪽)
실제로 유리 가가린이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세계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을 성공시킨 사건은 1962년생인 작가 뻴레빈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어쩌면 소련의 유인 우주비행 성공과 그 이후의 냉전과 좌절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한 국가의 운명과 그 내적 갈등 차원을 넘어 매우 복잡한 형태로 그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됐을 것이다.
소설에서 오몬이 겪는 삶의 여정보다, 그 영혼이 겪는 변화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우리에게 다다른 반짝이는 기만적인 빛으로 판단하며 평생을 우리가 빛이라 부르는 것을 향해 가는 여정으로 소모한다. 그 광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168쪽)
오몬이 어린 시절부터 품은 ‘우주비행사의 꿈’은 ‘영웅적 위업’이라는 강요된 이데올로기가 덧씌워지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일그러진다. 친구 미쪽이 ‘윤회 검사’(약물을 투여해 환각상태에서 자백을 받아내 기소하는 고문의 한 방법) 결과 사상이 불순한 부적격자로 처리돼 처형당하는 비극적 사건을 겪고, 동료 비행사들이 단계별로 죽어나가는 과정을 목격하는 등 온갖 우여곡절 끝에 달에 착륙한 오몬도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죽어간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마구 버둥거려 몸을 빼내어 순식간에 2미터는 족히 위로 올라가 환기구의 수평 구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 구멍 저편에는 흰 구름층으로 감싸인 지구가 보였다. 나는 흐느끼며 그쪽을 향해 기어갔다.”(223쪽) 뻴레빈은 현실 자체가 가지는 허구성과 상대성을 통해 체제 전복적인 부조리극으로 보여준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