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아버지는 좌파의 오류 범하지 않았다”… 中매체들 ‘시중쉰 띄우기’

입력 2012-05-24 21:41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라(平易近人).”

24일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사망한 지 10주기 되는 날. 광명일보(光明日報)는 이날 “쉬중신은 평생 ‘좌파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고 기리면서 그가 아들에게 특히 겸손한 처신을 가르쳤다고 전했다.

각종 매체들도 ‘시중쉰 칭송’에 나섰다. 시진핑 부주석이 올 하반기로 예정된 제18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직을 예약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쉰은 산시(陝西)성 출신으로 중국 북서부 지역에서 홍군(紅軍)을 이끌었다. 1949년 공산정권이 수립된 뒤 40세 되던 1953년에 정무원(국무원 격) 비서장을 맡아 정치 역정을 순조롭게 시작했다.

그러나 마오쩌둥(毛澤東)의 정적 펑더화이(彭德懷) 계열의 인물이었던 탓에 이른바 ‘류즈단(劉志丹) 사건’으로 1962년에 숙청되는 운명을 맞아야 했다. 류즈단 사건이란 ‘류즈단’이라는 장편소설을 반당(反黨)소설로 몰아 이 소설 출판에 간여한 시중쉰을 거세한 것을 말한다.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던 캉성(康生)이 권력 강화를 노리고 있던 마오쩌둥 동의 아래 이 사건을 주도했다. 소설 류즈단은 류즈단(시중쉰의 전우)과 가오강(高崗, 부주석을 지냈으나 권력찬탈 음모로 비판받자 1954년 자살), 시중쉰이 산간 혁명 근거지를 만들면서 활약한 일을 묘사하고 있다.

그로부터 16년 뒤인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실권을 잡자 비로소 복권됐다. 시중쉰은 개혁파인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를 지지했고 천안문(天安門) 사태 무력진압도 비판했다. 그는 중앙정치국 위원,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까지 지냈다. 2002년 5월 24일 세상을 떠날 때 88세였다.

시중쉰 만년에는 당시 장쩌민(江澤民) 주석, 후진타오(胡錦濤) 상무위원 등이 그를 당 원로로 깍듯이 예우했다. 특히 부총리였던 원자바오(溫家寶)는 시중쉰에게 자신을 정치적으로 키워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시진핑이 장쩌민에 의해 2007년 17차 당 대회에서 상무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차기 후계자 후보로 떠오는 데는 이러한 분위기가 큰 도움이 됐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