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징용자에 손해배상 판결] “일제 강제동원 정당화한 日 판결 인정 못한다”

입력 2012-05-24 21:44


대법원의 판결은 식민사관에 입각한 일본 법원의 확정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외면하는 일본 기업들의 몰역사적 행태에 대한 사법부의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크게 4가지다. 첫째, 일본 재판소 판결에 대한 승인 여부다. 일본 재판소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원고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217조 3호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외국 판결 승인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적인 강점(强占)이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 헌법 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효력이 배제된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쟁점은 일제 강점기 당시 미쓰비시, 일본제철과 현재의 미쓰비시, 신일본제철의 동일성 여부다.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와 일본제철은 1950년 특별법에 따라 해산되고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로 바뀌었으므로 동일기업이 아니라는 게 일본 법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본의 특별법이 전후 처리 및 배상채무 해결이라는 특별한 목적 아래 제정된 기술적 입법에 불과하고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은 법적·실질적으로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어 같은 회사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세 번째 쟁점은 1965년 6월 22일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로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했는가 여부다. 대법원은 국가가 조약을 체결했더라도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개인 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상충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제법상으로는 허용될 수 있더라도 국가와 국민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라는 점을 들어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네 번째 쟁점은 피고인들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가 여부다. 대법원은 원고 등이 소를 제기할 시점인 2000년 5월 1일까지는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즉 1965년 이전에는 한국과 일본간에 외교관계가 없었고, 1965년 이후에는 한·일 청구권협정과 일본 재판소의 청구 기각 등으로 원고 등이 손해배상 청구권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