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주일날 전자제품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입력 2012-05-24 18:22
얼마 전 어떤 토요일 날에 일어난 일이다. 큰 딸아이만을 집에 남겨 놓고 다른 가족은 다 외출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한참 공부를 하다가 물건 살 것이 생각나 외출옷을 차려 입었다. 그런데 2층 계단을 내려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반 친구인 ‘리앗’이란 소녀가, 바로 그 순간 떡 하니 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리 전화연락을 한 것도 아니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현관문을 여는 순간 친구가 서 있다면 놀랄 법도 했다.
유대인 소녀의 안식일
‘리앗’은 유대인 집안의 딸이다. 유대인 중에서도 보다 엄격하게 신앙을 가진 쪽이라 여러 가지 금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 와서 늦게까지 딸아이와 공부를 할 때에도 여간해서는 무얼 먹는 법이 없다. 페트 병에 든 물 정도를 마시거나, 무슨 특별한 표시가 되어 있는 것만 맛볼 뿐, 단 한 번도 우리 음식에 손에 대지 않았다.
얘기인즉슨 이렇단다. 마침 그 날이 토요일이었다. 그 사람들의 신앙으로 한다면 ‘안식일’이었다. 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유대인 소녀 ‘리앗’은 전자제품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TV를 시청하는 건 고사하고 스위치를 만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컴퓨터도 아이패드나 휴대폰도 만질 수 없으며,집에 놓여있는 전화조차 걸지도 받지도 않는다고 하니 좀 심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리앗’은 친구인 딸아이를 만나고는 싶은데 안식일이라 전화를 할 수 없으니 무작정 30여분을 걸어 우리 집까지 왔던 것이다. 더욱 더 놀란 건 안식일에는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나? 후에 그 아이에게 직접 물어 보니, 걷는 것은 안식일에 무한정으로 허용돼 있다고 했다. 신약성경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2999보(步)까지만 걸었고 3000보부터는 노동이라 해서 금했다고 한다. 리앗네 가족은 안식일에 마음대로 걸을 수 있으니 옛 바리새인들 보다는 더 ‘인간적으로’ 사는 셈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리앗네 가족처럼 주일에 전자제품에 일절 손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컴퓨터를 사용 못하니 논문쓰는 데서 해방될 터이고, 전화에 손대지 않으니 인간관계의 사슬에서도 풀릴 것이다. 자동차를 타지 못하니 어디 갈 일도 생길 리 없고, 아이패드 사용이 금지되니 보는 눈과 마음의 눈이 한결 자유로워질게다. 우리 가정의 경우 주일 예배 후 저녁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인터넷으로 ‘개콘’을 즐기곤 했는데 유대인들은 그 왁자지껄한 맛도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무엇이 남는가. 할 것이라곤 자연인으로 돌아가 걷는 것과 가족 간의 대화를 나누는 것 뿐이다. 좀 더 내면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터이고.
자신의 내면 관찰하는 날
옛날 팔레스타인의 어떤 마을에 실바노스라는 수도자가 살았다고 한다. 그는 늘 바구니 두 개와 조약돌을 집에 놓고 살았다. 선한 생각이 떠오르면 오른쪽에 있는 바구니에 조약돌을 담고,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왼쪽 바구니에 담은 후 저녁마다 조약돌을 세 보아 오른 쪽 바구니에 조약돌이 많으면 먹고 왼쪽 바구니에 조약돌이 많으면 금식했다고 한다.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마 5:8) 애쓰는 실바노스이니 어찌 존경받지 않았겠는가? 그러고 보니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실바노스처럼 자기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라고 만들어진 날 인 것 같다.
크리스천들도 주일을 주일답게 ‘지켜’보아야겠다. 보고 듣고 논쟁하고 폭소하고 고민하는 것에서 벗어나 잠잠하고 평온하며 고요해 보자. 안식일에 사람은 안식해야 한다.
(한영신학대 교수·캐나다 몬트리올대 초청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