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신종플루보다 훨씬 무서운 결핵

입력 2012-05-24 18:42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신종플루는 2009년에 창궐했다. 신종플루 경보 단계가 ‘주의’ 이상이었던 그해 4월 28일부터 이듬해 4월 1일까지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86만명을 웃돌았다. 이 중 사망자는 2009년 192명, 이듬해 1월부터 6월까지 71명에 달했다.

보건복지부는 예방을 위한 국민행동수칙을 발표했고, 학생 노인 등 신종플루 감염에 취약한 이들을 상대로 예방백신을 맞게 했으며, 언론을 통해 정책을 홍보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민관이 한마음으로 대처해 사망률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랬던 복지부가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결핵에 대해서는 낙제점을 받을 만큼 안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후진국병으로 여기던 결핵이 우리나라를 엄습하고 있는데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듯하다.

발병·사망률 OECD 1위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1960년대에는 영양결핍이 심한 탓에 결핵 환자가 국민의 5%에 달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의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결핵 환자는 크게 줄었지만 아직도 한 해 3만명 이상의 신규 환자가 발생한다. 지난해 신규 환자는 3만9557명으로 전년의 3만6305명보다 8.96% 급증했다. 결핵균에 감염됐지만 발병하지 않은 잠복결핵감염인은 국민의 30%에 이른다. 잠복결핵감염인은 면역력이 떨어지면 5∼10%가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는 2300여명으로 하루 평균 6.3명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신종플루보다 훨씬 위험한 질병인 것이다. 결핵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연간 80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의료계는 추정한다. 우리나라 결핵 환자 발병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로 일본의 4.3배, 미국의 22배나 된다. 결핵 사망자 수 역시 OECD 회원국 중 1위다. 미국은 우리나라를 결핵 후진국으로 분류한다.

최근 경기도 고양외국어고 학생 4명은 결핵 환자, 128명은 잠복결핵감염인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이 학교는 결핵 환자가 발견된 지 2개월이 지나서야 전교생을 상대로 결핵 검사를 할 정도로 안이하게 대처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결핵 환자가 생긴 학교는 한 해 70곳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1000여곳에서 2030명이나 발생했다. 입시 스트레스와 체력 저하, 과도한 다이어트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런데도 엑스레이 검진은 중1, 고1 때만 실시한다. 검진 이후에 발병하면 누가 결핵 환자인지 파악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공기로 감염되는 결핵은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함께 생활하는 학생 군인 등에게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건당국은 학생과 군인에 대한 정기검진 주기를 단축해야 한다.

치료약을 먹어도 결핵균이 죽지 않고 발병 위험이 높은 다제내성(多劑耐性) 결핵 환자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다제내성 결핵 환자는 2400명이 넘지만 320명만 정부의 입원 명령에 따르고 있다. 생계 문제와 병상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을 점차 늘려야 할 것이다.

방치하지 말고 대책 내놔야

일반인에 비해 2배 이상 결핵 발병률이 높은 장애인복지시설 거주자, 노숙자, 취약계층은 물론 결핵 고위험국 출신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가정 여성들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임채민 복지부 장관은 고양외고 사태가 발생하자 뒤늦게 “결핵종합대책을 7월 초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보건당국이 국민을 사지로 몰고 있는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그동안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기회에 결핵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기 바란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