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영석] 종편사업 정책의 실패와 책임

입력 2012-05-24 18:47


“독이 든 성배 성급하게 마신 후 속앓이 하고 있는 주류신문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올 상반기 세계 경제의 최대 화제는 노키아와 소니의 몰락이다. 노키아는 핀란드의 대표 기업으로 지난 십 수년간 휴대전화 시장에서 부동의 제왕자리를 차지했었다. 그런 회사가 아이폰의 등장 이후 새로운 스마트폰 환경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회사의 신용도가 ‘투기’ 혹은 ‘정크’ 등급 직전까지 내몰리는 수모를 겪고 있다.

소니 또한 ‘가전왕국’ 일본의 대표적 기업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새로운 워크맨이나 플레이스테이션이 출시될 때 전 세계가 열광했었다. 이런 소니도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기 시작하더니 올 1분기에는 사상 최대의 손실을 기록했다. 일본 경제 자체가 위협 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세계적 기업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전락하는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급변하는 모바일 기술 환경 변화에 제때 대응 못하고, 기존 관행이나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다 보면 누구나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이다. 시장의 주도권이 공급자에게서 소비자에게로 넘어오면서 생긴 무서운 법칙이다.

기업이 시대의 흐름을 오판하면 그 결과는 시장에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공적 영역의 국가정책은 그 가시적 결과가 매우 더디게 나타난다. 정책이 성공하지 못할 때 그 후유증은 매우 크고 치명적이다. 사회전체가 큰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정책 사업 실패 사례로 종합편성 유선방송 선정 사업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디지털 시대의 특성을 무시하고 정치적 논리로만 정책을 결정했다고 비판한다. 종편은 사업을 시작한 지 채 반 년도 안 돼 벌써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 저조한 시청률에 들어오는 수입은 적고, 초기 투자 및 제작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대부분의 사업자들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상황이 개선될 여지도 거의 없다는 전망이다.

사업자 선정 시작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종편 사업이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꼭 선정해야 한다면 한 채널 정도가 시장에 큰 무리를 주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무한정의 채널이 등장하고 원하는 것만 골라 보는 쌍방향 기술 시대가 도래한 마당에 획일적 내용을 시청하는 종편 스타일의 방송은 올드 미디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의 공중파 방송사들로 이미 과포화 상태인 시장에 신규로 새 사업자들을 무더기로 허가하는 것은 무척 시대착오적인 정책이었다.

제임스 하킨은 ‘니치’라는 자신의 책에서 이제는 시대적 환경이 ‘니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획일적 대중’에서 ‘잡식성 대중’으로 중간층이 변한 것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그는 모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종편이나 전통적 방송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주도권이 취향 중심의 소수 소비자 혹은 수용자에게 넘어 갔기 때문이다.

종편 사업이 실패할 경우 그 후유증이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 저널리즘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사양길에 접어든 신문사업의 탈출구로 뛰어든 종편 사업이 경영개선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모기업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종편 시장이 붕괴될 경우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정책결정자에게 돌아간다. 애초부터 무리한 정책이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시행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그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 사업자 선정 기간이 길어 불필요한 소모전을 야기하더니, 결과는 ‘장고 끝에 악수’ 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임명단계부터 적격성을 놓고 말이 많았다. 고령에 신문사에만 종사했던 경력에 비추어 디지털 기술시대를 선도할 수장으로는 전혀 걸맞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구속되어 있는 상태라 말하기가 민망하지만 잘못된 정책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독이 든 성배를 성급하게 마신 후에 말 못하는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 주류 신문들의 자화상이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롭다.

김영석 연세대 교수 언론홍보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