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서울의 밤, 별들은 왜 구경 안 나왔을까…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력 2012-05-24 18:17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신경림/실천문학사
동심은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의 세계에서는 못하는 말이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비밀을 하나씩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신경림(77) 시인은 자신의 나이에서 일흔 살을 깎아낸 일곱 살 소년의 입장으로 돌아가 동심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게 아니겠느냐고 슬그머니 말을 건넨다.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열 시까지 갈게’// 엄마는 야근/ 아빠는 회식// 학원에 갔다 와서/ 라면 하나 먹고// (중략)// 텔레비전을 틀었다가/ 핸드폰을 열었다가// 깜박 텔레비전 앞에/ 잠이 들었다// 이윽고 귓전에/ 엄마 목소리// ‘얘는 날마다/ 텔레비전만 보나 봐’//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부분)
맞벌이 부모를 기다리며 외롭게 잠든 아이가 밤늦게 귀가한 엄마에게 텔레비전만 본다는 꾸중을 듣는 장면이다. 혼자 쓸쓸하게 저녁을 보내는 아이의 심경도 잘 드러나 있지만 그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더욱 아이를 슬프게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강물은 얼마나 아플까/ 불도저와 다이너마이트로 온몸을 온통/ 깨고 부수고 파헤쳐 놓았으니// 강물은 얼마나 서러울까/ 모래무지 가물치 버들치가 놀 곳을 잃어/ 떠나서는 영 돌아오지 않으니”(‘가엾은 강물’ 부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파괴되는 강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읽혀지는 시이다. 아이들의 시선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벗어나 세상이나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투영한다. 보이는 만큼만 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너무도 정직하다. “찬란하고 멋진 서울의 밤 풍경이/ 보고 싶지도 않나 봐// 밤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데도/ 별들은 꽁꽁 숨어/ 하나도 나와 보지 않는다”(‘서울 하늘’ 전문)
성층권을 뒤덮고 있는 매연으로 인해 밤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과학적인 이유에 앞서 아이들의 시선은 빛난다. 동심의 세계에서 오늘 밤에도 별은 반짝이고 있다. 첫 동시집을 펴낸 신 시인은 “내가 정말로 동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히 한 것은 손자가 생기면서다”며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손자의 생각과 행동을 읽으면서 이것을 형상화하면 정말로 훌륭한 문학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