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선이] 행복한 직업
입력 2012-05-23 18:16
며칠 전 인터넷 언론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았다. 뜻밖에도 1위는 ‘예술가’였다. 2위는 국회의원, 3위는 연예인 순이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공통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고소득의 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은 순위에 들지 못했고, 다른 억대 연봉 직업군도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직도 성적으로 학교를 선택하고 전공학과를 정하는 풍조가 바뀌지 않고 있다. 이건 참 모순이다. 적성에 안 맞거나 본인이 살고 싶은 삶에 써먹을 일이 없어 보여 건성으로 대학을 다니게 된다면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온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방황하다 뒤늦게 다른 길을 모색하거나, 돌아가는 게 억울해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가 박사과정까지 한다 해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이 되지 않을까.
오래전에 중학생들과 책 읽고 글 쓰는 모임을 할 때 그런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다.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를 목표로 정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정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이 찾아가는 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그 아이들은 지금쯤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자기 일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좋은 책을 만들어 아이들의 양식으로 제공해 주는 것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힘든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으니 나도 행복한 직업 상위권에 든다고 자부해도 되겠지 하며 혼자 미소 지어본다. 우리 직원들에게도 출판은 글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그림과 디자인도 알아야 하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어울려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디렉팅도 해야 하니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꼭 화가나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일을 예술의 경지로 끌고 가려는 열정과 애정을 갖고 산다면 행복한 직업이 되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또 그렇게 살다보면 삶이 곧 예술이 될 테니 1위에 꼽힌 예술가의 범위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나는 청소년기에 좀 심하게 방황한 덕에(?) 일찌감치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고 살겠다는 소신이 생겼던 것 같다. 몇 가지 계기로 아이들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사는 것을 내 인생의 길로 정했는데, 그 길을 여전히 걸어가고 있으니 감사하다. 비우고 비우는 훈련을 하며 조금씩 더 가볍게 그저 타박타박 걸어가는 것이다. 소풍 온 아이처럼 나무도 보고 꽃도 보고 하늘도 올려다보고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남은 삶도 같은 톤의 색깔을 칠해갈 터이니, 내가 그려가는 소박한 그림이 아름답게 마무리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박선이 해와나무 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