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백홍석 우승컵을 들다

입력 2012-05-23 18:06


한국바둑의 위기설이 난무하는 이때 단비 같은 우승 소식이 전해졌다. 올해로 4회를 맞은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백홍석 9단이 예상을 깨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역대 우승 전적 2대 1로 한국이 앞섰지만 이번 시합은 초반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32강전에서 이창호 9단이 중국의 16세 소년기사 미위팅 3단에게 패하고, 이세돌 9단마저 당이페이 4단에게 발목을 잡혔다.

결국 16강전에는 중국 13명, 한국 3명(이원영, 박영훈, 백홍석)의 선수만 남게 됐다.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대진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16강전은 박영훈 9단과 이원영 3단의 형제대결로 박영훈이 올라왔고, 백홍석은 뉴위톈 7단에게 극적인 반집승을 거두며 합류했다. 8강전 2대 6의 상황. 하지만 믿었던 박영훈마저 이세돌을 꺾고 올라온 당이페이에게 무릎을 꿇었다. 저우루이양 5단을 물리친 백홍석 혼자 4강에 올랐다.

2001년 프로가 된 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한 백홍석은 2006년 SK가스배에서 이영구 9단(당시 6단)을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해 삼성화재배 세계대회 4강에 진출하며 바둑 인생의 전성기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십단전 준우승,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준우승, KBS 바둑왕전 준우승, 지난해 명인전 준우승 등 무려 9회 연속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준우승도 나쁜 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1등만을 기억하는 승부세계에서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백홍석은 내년에 군대도 가야 한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백홍석은 남은 기간 동안 마음을 비우고 한 판 한 판 열심히 즐겁게 바둑을 두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결과 한국기사 중 유일하게 4강에 들었고 마침내 중국의 후야오위 8단을 꺾고 생애 첫 세계 결승 무대에 올랐다. 상대는 세계대회 17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는 당이페이다. 당이페이도 한국의 강자들을 모조리 꺾으며 역시 첫 결승 무대에 올라왔다.

결승전은 5번 승부로 첫판은 백홍석의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2국과 3국을 승리하며 상대를 코너로 몰았다. 그리고 지난 16일 벌어진 결승 4국에서 반집승을 거두며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컵을 안았다. 백홍석에게도 아홉 번의 준우승 징크스를 넘어서고 우승상금 3억원을 차지한 뜻 깊은 순간이지만 이번 대회는 한국바둑계의 성패가 걸렸을 정도로 중요한 순간이었다. 세계 1위라는 한국바둑의 명성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었던 찰나에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손을 통해 우승의 짜릿한 맛을 볼 수 있었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