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복주머니란, ‘씨마르는 희귀종’… 인간 손길 막으니 개체수 늘었다
입력 2012-05-22 18:27
환경부와 산림청은 함백산 두문동재 털복주머니란 자생지 보호시설(펜스)을 각각 2008년과 2009년 설치했다. 산림청 보호시설 내 털복주머니란이 먼저 개체수를 늘렸다. 산림청 측은 목표대로 증식에 성공하면 이들을 모두 서식환경이 더 좋은 환경부의 보호구역 안으로 옮겨 심을 것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산림청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관할했던 점봉산은 지난해 초 환경부 관할 국립공원으로 편입된 후에도 탐방로 신규개설 등의 변화가 전혀 없다. 지금까지 비슷한 업무를 공유하며 다퉜던 두 기관이 협력할지 주목된다.
강원도 함백산 두문동재 정상부근의 털복주머니란 자생지 보호시설을 지난 17일 찾았다. 6월 초순쯤 피는 예쁜 꽃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2m를 넘는 철제펜스로 둘러싸인 100㎡(10mX10m)의 자생지에는 겹겹이 줄기를 둘러싸고 나온 털복주머니란의 잎이 보였다. 북방계 희귀식물이자 멸종위기종Ⅰ급인 털복주머니란은 얼레지, 수리취, 둥굴레, 참취 등 다른 초본에 둘러싸여 잘 판별하기 어려웠다. 동행한 국립수목원 이병천 보전복원연구실장은 “털복주머니란 꽃이 올해 더 많이 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남방한계선에 있는 정선의 털복주머니란은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자생지 내 보존=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은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있는 털복주머니란 자생지에 2009년 보호펜스를 설치하고 서식 환경을 개선했다. 성과는 금방 나타났다.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털복주머니란 자생지의 전체 개체 수는 2009년 28촉이었다. 2010년에는 38촉, 2011년에는 49촉으로 매년 늘고 있다. 이 가운데 2010년과 2011년 꽃을 피운 것은 9개체, 열매를 맺은 것은 4개체로 같았다. 올해에는 지난 17일 현재 개체수가 54개 정도로 늘어난 것으로 보여 개화 및 결실 개체수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꽃대는 10개체 가량에서 관찰됐다.
난초과에 속하는 털복주머니란은 현재 남한지역에 자생지가 몇 남지 않았다. 그마저 무분별한 채취에 따른 자생지 훼손과 개체수 감소로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강원도 설악산의 일부지역과 함백산의 다른 자생지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정선과 태백의 1∼2곳에서 소수만 남아있는 희귀식물이다.
털복주머니란은 키가 20∼30㎝로 달걀모양 잎이 줄기를 감싸고 있다. 6∼7월에 피는 붉은색 꽃은 흰 반점을 갖고 있다. 휜 반점때문에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종인 복주머니란이나 광릉요강꽃과 잘 구별된다.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원예식물자원으로 활용가능성이 높은 종이나 증식법이 개발되지 않았다. 털복주머니란은 중국, 일본 및 백두산 등 북한의 고산지역에 주로 산다. 같은 멸종위기종인 광릉요강꽃보다 분포지와 개체수가 확연히 적다.
◇자생지 내 보존과정의 문제점=국립수목원은 보호구역 안에서 털북주머니란의 생장에 해를 끼치는 관목류와 초본류 일부를 제거했다. 꽃이 예뻐 캐거나 사진촬영을 위해 훼손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도채 방지용 보호펜스를 설치했다. 사후관리는 보존 대상지에 대한 개체군 모니터링 및 위해요인 제거에 중점을 두었다. 간이 기상측정기가 매일 기온추이, 강우량, 풍속 등을 자동 측정한다.
물론 이런 방식의 강제적 자생지 보존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도 있다. 이 실장은 “보존 자체가 자발적 네트워크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보호펜스만 걷어내면 언제든 다시 훼손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고 말했다. 또 전문적 도채꾼이 언제 더 발달한 장비를 동원해 보호펜스를 무력화시킬지 알 수 없다. 그는 “‘7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과 같은 처벌 대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면서 “그러나 당장 보호시설마저 없다면 이곳의 털복주머니란도 다른 서식지에서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호시설의 주변 숲에는 산겨릅나무(산청목)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잘려나간 그루터기로 남아 있다. 산겨릅나무는 단풍나무과의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다. 지름 10∼20㎝의 그루터기들은 경제가치가 높은 수목은 언제든지 멸종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털복주미니란 자생지 보호구역 주변은 우리나라의 가장 전형적인 아고산지대 숲을 형성하고 있다. 이 실장은 “이 곳은 외래종 침입이나 인공식재의 흔적이 없는 자연상태의 숲”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갈나무, 거제수, 사시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골고루 섞여 있는 자연상태 숲은 요즘 말로 하면 동반성장을 하는 공동체”라고 했다. 반면 리기다소나무, 은사시나무, 일본잎갈나무 등 조림지에 주로 심는 경제수종은 주변 땅을 척박하게 만든다.
◇환경부도 자생지 보호구역=산림청의 털복주머니란 보호시설에서 약 500m 위에는 환경부의 털복주머니란 보호구역이 있다. 이곳은 환경부가 2008년 보호펜스를 설치했으나 사람들이 펜스를 들어 올리고 밑으로 침입하는 바람에 털복주머니란의 개체수가 줄었다.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지난해 펜스 뒤를 지지목을 받쳐 철조망을 통과할 수 없게 시설을 보강했다. 국립수목원 관계자는 지난해 6월 꽃피는 시기에 관측한 결과 털복주머니란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는 22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2008년 보호시설 설치 이전 34개체였으나 2011년에는 27개체로 감소한 반면 개화한 개체는 0개에서 2개로 늘었다”며 “보호구역내 소나무와 낙엽송 등을 간벌했는데도 작은 털복주머니란을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병천 실장은 “국립수목원의 보호구역에서 증식이 충분하게 이뤄지면 일조량 등 서식조건이 더 좋은 환경부 보호구역에 증식한 털복주머니란을 기증해 통합관리토록 하는 방안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계획이 실현될 경우 산림과 생물 유전자 다양성 보전을 위한 환경부와 산림청의 첫 본격적 협력사례가 될 것이다.
정선=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