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미풀 꽃 이미 지고 앙증맞은 금강애기나리 ‘방긋’… 인제 점봉산 고산·희귀식물 모니터링 지역 르포
입력 2012-05-22 22:10
야생화의 천국으로 유명한 점봉산에서는 지금 고산·희귀 식물 모니터링이 시행되고 있다. 산림청이 2009년부터 추진 중인 ‘기후변화 취약 산림식물종 보전·적응사업’의 일환이다. 국·공립 수목원 9개가 각기 담당한 구역에서 기후변화 취약 식물종의 개체군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점봉산 등을 맡았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점봉산(해발 1424m) 부근과 곰배령(1164m) 부근의 시험림 2049㏊가 대상이다.
이곳은 지난해 1월 국립공원에 편입됐지만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포함하므로 여전히 산림청 관할이다. 생태관리센터에서 입산허가를 받아야 하고, 1일 탐방인원은 100명으로 제한된다. 출입도 안내원 인솔을 받는다. 지난 17일 국립수목원 이병천 실장 일행과 함께 곰배령으로 향했다.
“모데미풀이 줄어든 것 같아요. 이맘때쯤 보여야 할 꽃은 이미 지고 없고….” 희귀식물이 주된 관심사인 이 실장은 자주 등산로를 이탈해 자신만이 아는 보물이 숨겨진 곳을 찾는 듯했다. 흰 꽃이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모데미풀은 전북 남원 운봉에서 처음 발견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미나리 아재비과의 한국 특산속이므로 특산종보다 더 귀하다. 지구상에 이와 비슷한 식물은 없다는 뜻이다. 이 실장은 “소백산, 설악산 고산지대에도 살지만 점봉산에 가장 많다”고 말했다.
동행한 수목원 직원 신재권씨는 아기처럼 앙증맞고 예쁜 꽃이 핀 금강애기나리에 꽃혔다. 폭이 20㎝나 되는 큰 잎 위에 3∼4㎝의 흰 꽃잎 3장을 달고 있는 큰연영초도 매혹적이다. 고산지대 희귀식물인 홀아비바람꽃은 등산로를 따라 지천으로 널려 있다. 태백제비꽃, 벌깨덩굴, 회리바람꽃, 동이나물 등도 꽃망울을 터뜨리거나 만개했다. 곰배령 정상 가까운 곳에서 만난 멸종위기종Ⅱ급인 한계령풀은 이미 꽃이 졌고 그 자리에 종자를 만들고 있다. 이곳의 한계령풀 자생지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점봉산 모니터링은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된다. 우선 점봉산 정상 일대 분비나무, 만병초, 주목 등 10종의 고산식물을 대상으로 개체군 크기와 면적, 생식특성을 조사한다. 둘째, 기후변화 취약종인 주목 군락지를 기후변화 모니터링구역으로 설정해 50개체를 집중 관찰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넓은 면적에 걸쳐 희귀·특산식물 모니터링을 한다.
계곡 옆에는 까치박달나무가 많았다. 피나무, 물푸레나무, 거제수나무, 사스레나무, 당단풍나무, 복장나무, 시닥나무, 다릅나무, 귀룽나무, 가래나무, 난티나무도 눈에 자주 띄었다. 귀룽나무가 산벚꽃, 돌배꽃 마저 다 져 버린 지금 원뿔모양의 꽃다발을 늘어뜨리고 있다. 장미과 나무 가운데 아직 꽃이 남은 것은 귀룽나무와 야광나무 정도였다.
곰배령 정상에 도착하자 산림유전자원 보호림 안내판이 보였다. 그러나 2010년 말까지 있었던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출입금지 안내판과 울타리는 사라졌다. 국립공원 경계가 변경됐지만 출입금지는 그대로인데 경관상 제거했다고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은 밝혔다. 공단 관계자는 “산림청에서 경계 표지판을 설치하는 데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단은 공원구역 확대에 따라 당초 단목령∼점봉산∼곰배령 코스 등 2개 탐방로를 정비할 계획을 세웠지만, 산림청은 허가하지 않고 있다. 공원 탐방로는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의 규제수준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에 산림생태계 훼손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다. 국립공원 구역확대는 지도상에서만 이뤄졌을 뿐 실제 달라진 것은 없는 셈이다. 공단 관계자는 “휴식년제를 포함한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탐방예약제를 하면 그런 걱정을 해소할 수 있다”면서도 “공단이 탐방로 개설을 당장 강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인제=임항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