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의 교회이야기] 드록바식 목회
입력 2012-05-22 21:05
지난 20일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첼시(잉글랜드)는 바이에른 뮌헨(독일)을 승부차기 끝에 누르고 팀 창단 후 처음으로 유럽 프로축구 정상에 올랐다. 이 경기 결과를 두고 국내외 언론들은 “드록바에 의한, 드록바를 위한 경기”라고 평했다. 드록바(34)는 1대0으로 지고 있던 후반 43분에 천금의 동점 헤딩골을 넣은데 이어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와 승리를 확정했다.
아프리카 코트디브아르 출신인 드록바는 보통 축구선수가 아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주전 공격수로 그는 2009년 리그 최고 득점왕을 차지했다. 축구공 하나에 인생을 걸고 있는 아프리카 청소년들에게 그는 우상의 차원을 넘는다. 일부 축구 팬들은 코트디부아르를 드록바의 나라, 즉 ‘드록국(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내 축구팬들은 그를 ‘드록신(神)’으로 칭한다. 코트디브아르는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건국 이래 첫 출전이었다. 물론 드록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코트디브아르는 1960년 독립 이후 내전으로 근대사가 점철된 국가. 특히 2002년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국토 전역이 피폐됐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전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2005년 10월 드록바가 이끈 코트디브아르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것은 드록바가 이끈 기적이었다. 그는 ‘레인 메이커(비를 가져오는 기적의 사람)’였다.
본선 티켓 획득 직후 드록바는 코트디브아르 전역에 방송된 생중계 TV 인터뷰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호소했다. “일주일만이라도, 단 일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읍시다. 전쟁을 멈춥시다.”
드록바의 호소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의 호소는 정부군과 반군을 모두 감동시켰다. 그의 호소 이후 일주일간 코트디부아르에서는 내전 이후 최초로 총성이 울리지 않게 되었다. 내전 종결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2년 뒤, 내전은 종식됐다.
전 세계 축구팬들은 드록바에게 ‘검은 예수’란 별명을 붙였다. 정부군과 반군의 막힌 담을 무너뜨린 그에게 적합한 별명이었다. 이후 그는 적극적인 나눔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의 나눔은 아프리카 전역으로 전염되고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1700여 달러에 불과한 코트디브아르의 청소년들은 드록바를 보면서 꿈을 생각하고 있다.
드록바는 여느 코트디브아르 청소년처럼 축구공 하나에 인생을 던졌다. 손에 쥔 것이라곤 축구공 하나뿐이었다. 축구공은 그의 정체성이고 소유이자, 영향력을 상징한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그는 ‘검은 별’이 되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축구를 통해서 보다 원대한 일을 이룰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일을 시도했다. 축구공 하나로도 평화를 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디디에 드록바. 그는 자신의 손에 지닌 것을 위대한 통로로 삼은 인물이다. 우리에겐 지금 ‘드록바식 목회’가 필요하다. 각자 손에 쥔 것을 하나님의 선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삼는.
종교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