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경아] 산다는 건 모두 힘들다

입력 2012-05-22 18:05


5월, 담장을 넘어 온 덩굴장미가 빨갛게 꽃을 피우며 길 가던 행인의 맘까지도 붙잡는다. 발걸음 잠시 멈추고 장미꽃을 바라보다 향기라도 맡고 싶어져 꽃잎에 다가간다. 그러다 가끔은 화들짝 놀라 “옴마야” 뒷걸음질을 친다. 잎은 거뭇하게 타들어가고 꽃받침 주변은 흰진드기가 셀 수도 없이 붙어 영양분을 빼먹는다. 장미꽃을 보며 ‘어쩜 저리 예쁜 꽃이 피었을고’만 생각했다면 겉모습만 본 것이다. 현실 속 장미의 삶은 진드기와 흑점병에 시달리면서도 한 송이 꽃을 피워 열매를 맺으려는 치열한 노력이다. 우리뿐 아니라 식물의 삶도 참으로 어렵고 힘들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곤충이 사라지면 식물이 행복해질까? 그건 또 아니다. 자신의 몸을 아프게 갉아먹는 애벌레지만 자라서 나비가 되고, 그 나비가 다시 날아와 꽃의 수분을 도와주는 매개자가 된다. 결국 식물과 곤충, 이들은 아프지만 서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공생의 관계다. 여기에 팽팽한 균형감각이 작용한다.

건강한 식물은 병충해의 공격을 참고 이겨낼 힘을 지니고 있다. 적당한 선에서 곤충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나머지는 스스로 벌레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퇴치한다. 식물이 독성 수액을 흘리고, 가시를 만드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식물이 이 균형의 힘을 잃게 되면 병충해의 공격에 휩쓸려 죽고 만다. 결국 병충해에 의해서 죽었다기보다는 나무 스스로 건강함을 잃어 생명을 다한 셈이다.

정원사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무가 병충해를 이길 수 있도록 돕는 많은 방법을 연구해왔다. 하나는 살충제를 뿌려 벌레를 죽이는 것인데 이 방법은 부작용이 많다. 벌레를 다 죽이고 나면 결국 식물의 수분을 도와줄 매개자가 없어지고, 더불어 살충제도 처음 몇 번이 효과적이지 벌레들도 생존을 위해 내성을 길러 나중에는 약물에도 끄떡없는 슈퍼 병충해가 된다.

두 번째 방법은 천적이나 이웃해 있는 다른 식물들의 향기 등을 이용해 벌레의 접근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미약해서 근본적인 방지가 되진 않는다. 마지막 방법은 식물 스스로가 병충해 속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식물이 건강을 잃게 되는 원인은 대부분 영양분, 빛의 흡수가 어려워질 때다.

그래서 정원사는 부지런히 잔뿌리가 흙 속에서 영양분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공기층을 만들어주고, 병원균의 온상지가 되는 흙을 덮고 있는 썩어가는 낙엽을 치워주고, 잡초에 의해 영양분을 뺏기지 않도록 관리를 한다. 노련한 정원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식물은 정원사가 아니라 흙이 키운다. 정원사는 다만 그 흙을 돌볼 뿐이다.”

변화무쌍해지는 이상기온은 우리뿐만 아니라 식물들에게도 치명적이다. 이 상황 속에 식물들은 불평이 아니라 살아갈 방법을 죽을 힘을 다해 찾으려 노력한다. 산다는 건 모두가 참 힘들다. 하지만 그 끝에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장미꽃도 피어나고, 가을이 되면 탐스러운 열매도 열린다.

오경아(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