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영환씨 안건 상정도 못한 인권위

입력 2012-05-22 18:06

중국 국가안전부에 50일 이상 구금돼 있는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 안건이 지난 21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상정이 무산된 배경이 절차상 문제 때문이었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권위는 그제 제11차 전원회의를 열고 김씨 안건 상정 문제를 논의했다. 김태훈 비상임위원이 “긴급하고 시의를 다투는 문제이므로 긴급 상정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일부 위원들이 회의 당일 안건을 상정하는 것은 절차에 맞지 않다며 반대했다. 김 위원이 “인권의 속성은 현장성에 있는데 오늘 논의하지 않으면 다음 전원회의까지 또 2주가 흐르게 된다”고 재차 주장했으나 20여 분간 절차 논쟁 끝에 결국 상정이 무산됐다고 한다.

상정에 반대한 위원들 주장대로 김씨 사태가 불거진 지 7일째가 됐는데도 사전고지 없이 회의가 시작되고서야 상정이 논의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동안 인권위에서 이 사안을 경시했거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면 직무를 유기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차상의 문제를 따지다가 중요한 안건을 상정하지 않는 행태도 이해하기 어렵다. 절차 문제가 중국에 억류된 국민의 인권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권위 운영규칙에 긴급을 요하는 경우 등에는 미리 공개하지 않은 안건이라도 위원장이 상정해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자세한 속사정을 알 수 없으나 절차상 문제로 인권 문제가 경시되는 ‘탁상 행정’이 인권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김씨의 석방에 유리한 조건을 놓고 판단이 달랐다면 회의에서 조정하면 된다. 우려스러운 것은 인권위의 이런 행태가 자칫 김씨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미온적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중국 당국에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가뜩이나 외교부가 이 사태와 관련해 제대로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중국에 끌려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인권위가 조속히 이를 다뤄 적절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