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럽 MD 통제권 나토에 이양… 지중해 美 전함·터키 레이더 기지 넘기기로

입력 2012-05-21 19:13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정상들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유럽 전역을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유럽 미사일방어 시스템(MD·Missile Defense) 1단계 조치 개시를 선언했다.

그동안 미국 주도의 MD에 반대해 온 러시아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할 것으로 보여 미-러 관계가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MD의 첫 단계로 요격기를 탑재한 채 지중해에 배치된 미 전함과 터키 소재 레이더 시스템의 통제권을 독일 나토 사령부가 갖도록 결정했다.

이 첫 단계 조치들은 적국의 미사일 공격에 맞서 나토 회원국이 매우 제한된 수준의 방어력을 갖추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토의 MD 계획은 4단계에 걸쳐 2018년쯤 전체적인 실행 체계를 갖추게 된다.

회원국들은 MD가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니며, 이란 같은 적국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차단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유럽 MD가 완성되면 자국의 핵 억지력이 무효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러시아와의 대화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 정상들도 선언문에서 이번 MD 계획이 러시아에 대항하거나 러시아의 전략적 억지력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아나톨리 안토노프 국방차관은 이날도 전략적 균형관계를 무너뜨릴 것이라며 나토의 MD 계획 강행에 대해 강력히 경고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러시아와 나토가 MD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을 함께 가져야 하며, 이것이 러시아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로 약속할 것을 나토에 요구해 왔다. 아울러 나토가 MD 시스템을 강행하면 나토 회원국과 인접한 칼리닌그라드에 이스칸데르(방공)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무력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영국 소재 유럽외교협회의 국방전문가 닉 위트니는 “러시아는 핵 전력에 매우 민감하다”며 “왜냐하면 초강대국이라는 러시아의 지위가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나토의 이번 결정은 최근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양국 관계가 더욱 경색될 것으로 우려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대규모 반푸틴 시위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비난하고 최근 주요8개국(G8) 정상회의에도 불참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